알츠하이머 고백한 배우 윤정희, 증상 벌써 10년째

2019-11-10     주영은 기자
배우

[데일리중앙 주영은 기자] 

배우 윤정희(75)가 알츠하이머로 10년 째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0일 윤정희의 남편인 백건우(73) 피아니스트는 딸 진희씨와 함께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나서며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10년쯤 전에 시작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우린 결혼 후부터 단둘이서만 살고 모든 것을 해결해왔다. 사람들은 나보러 혼자 간호할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잘 아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면서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너무 힘들어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연주 여행을 같이 다니면 환경이 계속 바뀌니까 겉잡지를 못했다. 여기가 뉴욕인지 파리인지 서울인지, 본인이 왜 거기 있는지"라며 "연주복을 싸서 공연장으로 가는데 우리가 왜 가고 있냐고 묻는 식이다. '30분 후 음악회가 시작한다' 하면 '알았다' 하고 도착하면 또 잊어버린다"고 증세를 설명했다.

배우 윤정희의 투병 사실은 영화계와 클래식 음악계에서 일부 가까운 지인들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지만 그녀의 남편과 딸은 투병 사실을 밝히며 그녀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보였다.

딸 백진희 씨는 "엄마가 배우로 오래 살며 그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사람이다. 이 병을 알리면서 엄마가 그 사랑을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면서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엄마에게 사랑의 편지를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지금 엄마에게 그게 정말 필요하다"는 바람을 전했다.

윤정희는 지난 5월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요양 중이다. 이들 부부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 씨가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녀는 현지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 중이다.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널리 알려졌던 윤정희는 1967년 데뷔 후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2010년도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며 늦은 나이에 시를 배우는 할머니 '미자'를 맡아 연기했다. 당시 윤정희는 깊이있는 연기를 선보여,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상, 그리고 미국 LA비평가협회로부터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고, LA 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미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를 겪는 역이었다. 이창동 감독이 처음부터 윤정희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으로 알려졌다. 미자라는 이름은 윤정희의 본명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한국 영화사를 통할한 찬란했던 배우 윤정희의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영화 '시'가) 마지막 작품인데 참 이상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역할이라는게.. 그때 배우로서 자존심 때문에 출연했는데 긴 대사는 써놓고 읽으며 하고 그랬다"면서 "그 뒤에도 하나 더 영화를 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도 같이 보고 구상도 했는데 잘 안되더라. 상 받으러 올라가기도 쉽지 않았으니"라고 말했다.

백건우는 클래식음악계에서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다. 인사동 길을 걷을 때 백건우는 여전히 윤정희의 가방을 들고, 그녀의 손을 잡는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작업의 동반자다. "제게 가장 엄한 평론가이고 제 음악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쑥쓰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