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김삿갓이 무릉계라 극찬한 영월의 오지 '어둔마을'

들모랑이서 싸리골 지나 노루목까지 자동차로... 노루목에서 구불구불 산길 오르니 어둔마을 고개 너머에는 김삿갓이 살던 집 남아 있어... "내 평생 돌아보니 나만 홀로 아프게 보냈구나"

2021-06-13     석희열 기자
강원도의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노루목에서 5리 길을 걸어 올라가니 강원도 영월땅 오지 어둔마을이다.

12일 오후 길목인 노루목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김삿갓문학관을 둘러보고 근처 버들고개에 있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를 참배했다. 

무덤 앞에는 빨간 꽃이 놓여 있었고 누군가 다녀간 듯 온기가 느껴졌다.

집안의 몰락으로 가족이 영월 산골짜기에 오두막을 짓고 숨어 살며 버들고개를 수없이 오갔을 김삿갓의 흉리가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김삿갓은 해학과 풍자로 당시 신분제도와 빈부 격차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를 많이 남겼다.

이어 우리는 무인지경인 산골짜기를 돌고돌아 어둔마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먼지가 폴폴거리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을 올라가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은 어둔마을, 오른쪽은 김삿갓이 살던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김삿갓 주거지 표지판이 나왔다. 김삿갓은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며 방랑생활을 시작한 스물 두 살까지 살았다 전해진다.

현재의 주거지 건물은 2002년 9월에 복원한 것이다.

조선 8도를 물처럼 구름처럼 떠돌았던 김삿갓은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영월의 이 초가삼간을 늘 그리워했던 거 같다.

조선

"새는 둥지, 짐승은 굴이 있어 다 살 곳 있건만/ 내 평생 돌아보니 나만 홀로 아프게 보냈구나/ 짚신 신고 대 지팡이 짚으며 천리 길 떠돌 때/ 물처럼 구름처럼 흐르며 사방을 내 집 삼았네/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 원망하기도 어렵지만/ 한 해가 저물 때면 슬픈 회포가 가슴에 가득했네/ .../ 일신 곤궁하니 매양 냉대하는 세속의 눈길 만나/ 세월 갈수록 터럭만 검푸르게 된 게 유독 아팠네/ 돌아가기도 어렵고 우두커니 서있기도 어려운데/ 며칠이나 방황하며 길가를 맞닥뜨리고 있을까."

방랑시인 김삿갓이 자신의 한평생을 돌아보며 지은 시 '평생시'의 일부다.

안동김씨 자손인 김삿갓은 이름은 병연, 자는 난고다. 1863년 전라도 땅 화순군 동복에서 57세의 나이로 객사했다.

조선

김삿갓 주거지에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니 그 옛날 김삿갓이 무릉계라 극찬했던 와석리 어둔마을이다.

마을이라야 한 가구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식구는 50대 부부와 15살짜리 중학생 아들 하나, 이렇게 셋이 전부다.

아래채와 위채로 돼 있는 집 마당에는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벌과 나비들이 윙윙거리며 한가롭게 마당을 날아다녔다.

집안 곳곳에는 땔감으로 쓰는 장작이 쌓여 있었다.

이 부부는 그 깊은 산 속에서 오갈피와 채소 농사 등을 지으며 산다고 했다. 도시 생활을 하다 29년 전에 이곳에 와 정착했다. 그때도 이 오지 마을에는 이 부부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