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사 최고의 맞수 남진-나훈아

'오빠 부대'의 창시자... 하춘화 "둘이 나오면 객석이 딱 둘로 갈라졌다"

2010-12-28     이성훈 기자
한국 대중가요사의 최고의 맞수로 손꼽히는 남진-나훈아. 1960년대 중반 혜성처럼 가요계에 나타나 10여 년 동안 전성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두 사람은 남인수 이후 최고의 가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나훈아-남진은 특히 1970년대 쌍벽을 이루며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우리나라 '오빠 부대'를 창시한 원조이기도 하다. 두 사람 의도와는 달리 팬들은 늘 둘로 나뉘어 경쟁을 부추겼다.

팬들이 가장 열광적으로 반응했던 때가 두 사람이 격정적으로 대결했던 이 즈음이다. 극장 쇼가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부산 보림극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여겨진다. 여성 팬들이 자신의 속옷을 무대 위로 던지며 열광하던 때도 나훈아-남진이 세게 맞붙던 1970년대였다.

이 때문에 당시 한국 지성계의 대표적인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도 두 사람의 대결 구도가 등장할 정도였다. 대중 가수의 이름이 창비에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1970년대 톱가수 하춘화씨는 남진-나훈아가 한 무대에 서면 "객석이 딱 둘로 갈라졌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하춘화씨는 27일 밤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진행 유재석·김원희)에 출연해 1970년대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 대해 얘기하며 "그 당시엔 가수왕이 남진 아니면 나훈아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당시엔 10대 가수에 남자 5명, 여자 5명이었지만 가수왕은 사실상 나훈아-남진 대결이었다"며 "그래서 무대는 항상 긴장되고 객석도 웅성웅성했다"고 전했다. 둘 가운데 가수왕을 받지 못한 쪽 팬들은 상대를 향해 흥분하며 울고불고했다고도 했다.

하춘화씨는 "한번은(1971년인 듯) 가요제 마지막 순간 긴장 속에서 가수왕을 남진씨가 받고 막이 내렸다"며 "그런데 나훈아씨가 무릎을 꿇었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70년대 가요계 최고의 맞수였던 두 사람은 일상적으로 경쟁을 했지만 한 해의 가요를 결산하는 연말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늠할 수 없는 대중의 인기를 누린 두 사람이었지만 10대 가수왕은 늘 남진씨에게 돌아갔다. 나훈아씨는 정상의 자리에 머물면서도 가수왕에는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늘 라이벌에 밀려 쓴 잔을 마신 것.

남진씨는 군 제대 직후인 1971~973년 내리 3년  MBC 10대 가수왕을 휩쓸며 한국 대중가요사에 최고의 전성기를 수놓았다.

'트로트 없인 못살아' 스페셜로 꾸며진 이날 <놀러와>에는 하춘화씨를 비롯해 남진·송대관·현숙·박현빈씨 등이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