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촛불집회 폭력시위 유도 자작극?

국가인권위, 보고서 통해 밝혀... 조정식 의원, 국정조사 요구

2008-10-30     석희열 기자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폭력 시위를 유도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촛불시위 직권조사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 경찰이 촛불집회 참가자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의 폭행을 유발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52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이날 서울시청 앞 세종로에는 최대 10만명의 시위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치며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다.

세종로 조선일보사 앞에서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던 경찰은 이날 밤 12시17분께(6월 29일 0시17분께) 갑자기 강제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대의 허리를 공격했다. 방패와 진압봉을 든 전투경찰 수백명이 서울시의회 건물 쪽에서 일시에 뛰쳐 나오며 시위대의 요충지를 강타한 것이다.

기습 공격에 놀란 시위대는 흩어졌다. 넘어지고 깨지고 밟히며 피를 흘리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방패와 진압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순식간에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밀어붙였다. 경찰과 일부 시위대 사이에선 격렬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촛불시위 사상 양쪽이 가장 격렬하게 맞붙은 이날 최소한 수백명이 다쳤다. 경찰은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50여 명을 연행해 갔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경기 시흥을)은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경찰이 시위대 중앙으로 소수 진압부대(100여 명)을 돌격시킨 이유에 대해 인권위는 폭력 시위 유도를 위한 경찰의 자작극 의혹이 있다고 문제 제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인권위가 요구한 당시 세종로 일대의 무선 통화 내역 등 결정적 증거가 될 자료 제출을 거부해 이같은 의혹을 짙게 하고 있다. 인권위는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관련 경찰, 전경, 시위대를 골고루 인터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 보고서는 경찰의 무리한 강경 진압 배경에 대해 정국 반전의 노림수로 추정했다. 정부의 고시 강행으로 격앙돼 있던 촛불시위대의 폭력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수의 진압부대를 시위대 한 가운데로 투입했다는 것.

실제 이날 폭력사태 이후 촛불집회가 여론으로부터 점차 고립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반면 정부와 경찰은 촛불시위에 대해 원천봉쇄와 검거 위주의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촛불은 이후 동력을 잃고 차츰 사그라졌다.

조정식 의원은 이에 대해 "과거 광주민주항쟁 당시 선량한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갔던 군사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면서 "국정조사를 통해 경찰의 폭력 시위 유도 자작극 의혹을 국민 앞에 명백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