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300] 깻묵
한상도(농부 작가)
2015-05-08 한상도 기자
기계에 살짝 볶아 통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줄줄 흘러내리는 들기름. 저 기름에 깨소금 뿌려 나물이라도 무쳐 먹었으면... 저도 모르게 입안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제 시선은 뒤쪽으로 쏟아지는 깻묵에서 멈췄습니다. 육중한 기계에 찧어져 한 방울의 기름까지 다 내어주고 볼품없는 껍질로 버려지는 깻묵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위로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산중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하니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몇푼 안되는 연금을 모아 용돈이라며 내미는 노인.
지난번 단종제 행사 때에는 지팡이를 짚고도 가뿐 숨을 몰아쉬며 찾아와 그래야 잘 된다며 기어코 장아찌 한병 사주고 가시던 노인.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꼭 저 깻묵과 같아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또다시 맞이한 어버이날. 가까이 있으면서도 바쁘다고 자주 찾지 못했는데 오늘만큼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겠습니다.
지난번에 짠 저 들기름에 어수리나물 팍팍 무쳐 따뜻한 밥 한끼 같이 하며 거칠어진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