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언론관계법 단독상정... 야당 "원천무효"

고흥길 위원장 "여야 협상 진전없어 일괄 상정"... 민주당 상임위 점거, 정국 파란

2009-02-25     석희열 기자·주영은 기자·이성훈 기자

여야가 25일 정면충돌했다. 2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법안인 언론관계법을 한나라당이 속도전을 앞세워 단독 상정에 나서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과 격돌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속도전에는 예상대로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총대'를 멨다.

고 위원장은 이날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신문법 개정안 등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22개 언론관계법을 직권으로 기습 상정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은 요건과 절차를 갖추지 못한 불법행위라며 '원천무효'를 격렬히 주장했다.

고 위원장은 미리 작전을 세운 듯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던 의원들의 질의를 오후 3시47분께 갑자기 중단시킨 뒤 "3당 간사에게 계속 추가 의제 협상을 요청했지만 도저히 진전이 없는 것 같다"며 직권상정 강행 뜻을 밝혔다.

이어 "위원장으로서는 국회법 제77조에 의해 방송법 등 22개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법을 전부 일괄 상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문방위 행정실 직원에게 의안을 위원들에게 배부하라고 지시했다.

문방위 회의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마주보고 앉은 여야 간에 고성이 오가며 육탄전을 방불케 하는 물리적 충돌이 당장 일어날 것 같은 일촉측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고흥길 위원장은 이런 불안정한 틈을 타 오후 3시49분께 기습적으로 "미디어법 등 22개 법안을 상정한다"며 의사봉을 급하게 3번 두드렸다. 순간 민주당 이종걸 의원 등이 몸을 날리며 육탄 저지에 나섰으나 날치기 상정을 막는데는 실패했다. 

고 위원장은 손뼉을 치며 정회를 선포한 뒤 바삐 회의장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원인무효'를 외치는 야당 의원들의 저지에 막혀 한동안 회의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정론관에서는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쟁점법안 처리에 여야가 끝내 합의하지 못하면 직권상정할 수도 있다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성명을 읽고 있었다.

문방위 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고흥길 위원장이 사전에 합의한 14개 법안 이외의 다른 법안을 상정하면서도 국회법 제77조에 따른 의사 일정 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의안을 미리 배부하지 않았으며, 법안 명칭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 위원장의 직권 상정 시도는 미수에 그친 '원인무효'"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날 고 위원장이 직권상정을 시도한 변재일 의원이 대표발의한 저작권법 일부 개정법률안 등 22개 법안에는 '미디어법'이라는 명칭을 가진 법률안은 없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고흥길 원맨쇼'는 결국 실패한 날치시 쇼로 끝났다"며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고흥길 위원장이 불법 날치기 시도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으면 모든 상임위 활동을 중단하고 국회 운영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고흥길 위원장의 직권상정은 요건을 갖춰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며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몰아세웠다.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고 위원장이 22개 법안을 상정한다고 분명히 밝혔고, 의사봉도 3번 두드렸기 때문에 직권상정 요건을 모두 갖췄다"며 "절차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 위원장이 법안 명칭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위원장이) 지난 19일 관련법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다소 엉뚱한 해명을 내놓으며 야당의 지적을 정치공세로 일축했다.

나 의원은 "직권상정은 결코 강행 처리가 아니다"라며 "여야 간에 정상적인 논의를 위한 수순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부터 국회 문방위 회의실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여는 등 사실상 상임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도 한나라당 고흥길 위원장의 직권상정 시도는 의회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불법적인 폭거라며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가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국회 파행 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