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리고 봄눈
다시 봄, 왜 이리 봄이 오면 그리운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오는 봄
너를 보면 눈부셔
…………………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봄
- 이성부 '봄' 중에서 -
어느새 민들레와 토끼풀도 파릇파릇한 잎새를 뽐내며 온 들녘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마 언덕 너머 저 산 허리에는 할미꽃도 분홍 노랑 자주 보라 등 현란한 빛깔로 번져가고 있겠지. 잔설같은 겨울의 흔적이 아직도 저렇게 남아 있는데….
봄눈
봄에 오는 눈은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졌던가. 대학 1년, 새내기 환영회 때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다. 솔가지에 소복히 쌓이던 눈이 좋아 껑충대며 거침없이 카메라를 눌러대던 기억이 새롭다.
고즈너기 숨죽인 산중의 봄눈. 교수님과 새내기 재학생이 한데 어우러진 환영회파티. 경건하게 축시 송시가 오가고 산나물 비빔밥에 툭진 막걸리가 인정을 풀어주고 노교수님의 그윽한 샹송이 공간을 누빌 때 우리는 그것 만으로 가슴이 타올랐었지-.
다시 봄. 왜 이리 봄이 오면 그리운지. 지난 아름다웠던 추억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겁다. 그시절 입던 청바지를 장롱 옷걸이에서 꺼내 벽에 걸어도 보고 노-트를 꺼내 조용히 그때 내 가슴을 꽉 채워두었던 숙제들을 더듬어본다.
<< 에피파니 : 새로운 각성, 이미 있었던 일을 어느 순간에 새로이 인식, 새로운 감동 종소리 등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그 언젠가 계기가 생겨나면 의식 속에 떠오르게 된다. 어떤 환상적 내지 승화된 이미지로서…. >>
그렇다. 하나의 문학작품에 있어 시간은 때로 역전, 정지될 수도 있다. 정경묘사일 수도 있겠고 작중 인물의 성찰이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니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떨까.
내가 봄마다 꺼내볼 수 있는 것, 한번씩 폭풍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지나온 시절에 전율하여 환희에 젖곤 하는 그런 것, 그리고 이내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그걸 나는 임의대로 삶의 '에피파니'라 명명해본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으며 부디 설레는 봄을 눌러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