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헌법 제85조(전직대통령 예우 규정)의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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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헌법 제85조(전직대통령 예우 규정)의 폐단
  • 이경선 교수
  • 승인 2019.03.0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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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선 교수(서강대 / 입법학, 법정책학)
▲ 헌법상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중범죄인 이명박 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6일 법원의 보석 허가로 수감 349일 만에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풀려나고 있다.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헌법상의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과 전직대통령예우법이 존치되고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세부적으로 조목조목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헌법 제85조의 존치로 발생하는 문제는 첫째,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의 의도가 깃든 태생적 비민주성을 해소하지 못하고 헌법에 방치해 둠으로써 시대정신을 정연하게 담아두는 한국사회의 최고규범으로서의 완결성과 순수성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은 물론 전직 대통령까지 예우의 대상으로 상정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고도화와 생활화가 필수적인 시대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제왕적, 위계적, 권위적 존재감을 일반 국민에게 끈임 없이 환기시키는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왕정으로의 복벽(復辟)을 거부하고 공화국 체제를 선택하고서도 여전히 온 사회가 왕에 준하는 존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추종하고 염두하고 있어야 하는 형국에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존재를 정점으로 사회 전체를 상하의 위계구조로 단계화, 층위화, 서열화시키는 구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기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세 번째로, 헌법 제85조는 한국사회를 계급장과 완장에 기반한 예우 피라미드를 형성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

모든 예우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한 당사자의 희생이나 기여도 등 '공적'을 토대로 예우의 높낮이가 책정돼야 하는 것이지 단지 계급장이나 완장의 높낮이로 획정돼서는 곤란한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목숨을 바쳐 구출한 일반 시민의 의인으로서의 희생은 전직 대통령의 공적보다 위대한 것일 수 있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어 어린아이를 구출하다 사망한 소방관의 죽음은 전직 대통령의 모든 업적보다 숭고한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검사든, 재판관이든, 감사원장이든 헌법이 정한 주요 역할자들이 재임 중에 각자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규범적 요청이다. 그들이 그 자리로부터 퇴직하거나 물러난 이후에도 오로지 사회적으로 높고 큰 권한을 행사하는 직책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해서 우대받는 구조가 과연 공정하고 정당한 사회인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이 정한 헌정 신분이고 고위직 공무원이었더라도 사회에 얼마나 공헌했는가, 얼마나 희생했는가, 얼마나 직분에 충실하였는가 하는 역사의 평가, 국민의 평가, 사회의 자율적 평가를 기반으로 해서 존경과 예우가 따라가도록 해야 할 일이지 오로지 일정한 '계급장'과 '직책'에 오르고 '완장'을 찼었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 동안 그 신분과 생활수준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매우 엄격하게 분별돼야 한다.

적어도 직급이나 직책에 대해 '기초예우' 수준을 설정하고, 여기에 일정한 '가산예우'를 더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있을지언정 직급과 직책 그 자체가 현직에 있어서의 예우 차이가 아닌 퇴직 이후에서의 예우 차이까지 지속되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 제도 설계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매우 결여돼 있다. 변호사 등 법조인이기만 하면 일반인보다는 더 도덕적이고 정의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논리 비약적 사고의 오류처럼 각자의 정치권력 추구 활동, 권력 경쟁 등을 통해 고위직에 올랐다는 그 사실 만으로 존경받을 만하고 예우받아야 한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제도는 매우 심각한 비약에 해당한다.

▲ 이경선 서강대 교수(입법학, 법정책학).
ⓒ 데일리중앙

권력 경쟁을 통해 대통령에 오른 사람을 죽을 때까지 종신 예우해야 한다는 발상은 그를 보좌하면서 장차관이나 공공기관 임원,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에 발탁되는 등 집권의 수혜를 공유한 정치추종자들의 관점이지 국민의 관점은 아니다.

네 번째로, 헌법은 제1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어 제11조 제2항에서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85조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은 단지 최고위 공직자 신분에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전직대통령 명문家', 왕족에 준하는 '대통령族'를 형성시키는 것을 사실상 허용하고 뒷받침하는 반민주적 폐단을 낳고 있다.

예우가 너무 과도하면 특권이 되고 특권이 종신화되면 특수계급이 되는 것이다.

헌법을 기반으로 공화주의, 민주주의 고도화를 지향해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만약 현재와 같이 대통령제가 유지되고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현재와 같은 예우 체계가 지속돼 간다면 우리 사회가 떠받들어야 하는 대통령家, 대통령族은 계속해서 누적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단지 예우가 아니라, 예우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특수계급의 창설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비록 왕족-양반-양민-천민-노비 구조나 인도 카스트 제도와 같은 계급 사회 구조와는 다른 형태일지라도 현대 사회에서 변형된 신분계급을 형성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경선 교수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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