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 수출하는 대한민국... 한 대사관의 갑질 사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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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수출하는 대한민국... 한 대사관의 갑질 사례 충격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9.09.29 16:28
  • 수정 2019.09.29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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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사모가 사용자처럼 굴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업무 지시
대사 부부 일상식 제공을 중단하자 관저 요리사 괴롭히기 시작
대사에게 도움 요청하자 "'사모의 생각이 바로 내 의견'" 방치
폭언·갑질에 소송까지 대사 부부는 '왕'... 대사관 역할 '중요
최근 직장갑질119에 진정된 한 해외 대사관의 직장 내 괴롭힘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해외 공관의 행정직원, 관저요리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대사관의 직장 내 갑질을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직장갑질119)copyright 데일리중앙
최근 직장갑질119에 진정된 한 해외 대사관의 직장 내 괴롭힘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해외 공관의 행정직원, 관저요리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대사관의 직장 내 갑질을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직장갑질119)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직장갑질 해외로 수출하는 대한민국.

폭언·갑질에 소송까지 해외 대사관 대사 부부와 대기업 해외 지사장은 왕.

최근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한 해외 대사관의 갑질 사례를 보면 충격적이다.

대사 사모가 사용자처럼 굴며 관저요리사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업무 지시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이라고 호칭하며 삿대질도 예사다.

규정에도 없는 대사 부부 일상식 제공을 할 수 없다고 하자 대사 사모가 관저요리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관저요리사는 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사모의 생각이 바로 내 의견'이라며 힘들면 떠나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요리사는 이달 초 사직서를 제출했다.

직장갑질119는 29일 "문제의 상황이 계속됐고 그걸 사용자인 대사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문제를 방치한 상황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요리사 A씨는 해외 대사관에서 관저요리사로 일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A씨가 2016년 맺은 계약서에는 "공관장(배우자) 및 가족의 지시를 따르고, 일상식(부부 가족의 식사)을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관병 갑질 사건이 터지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갑질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배우자 및 가족, 일상식'이 들어가 있는 조항이 삭제됐다.

전임 대사 부부는 A씨에게 일상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새로 부임한 대사 부부는 일정 금액을 받고 공식적인 근무시간에 점심과 저녁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계약이 되지 않을 것이 두려워 서명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사 부부에게 일상식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 대사 사모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대사 사모는 수시로 주방에 내려와 A씨의 업무에 간섭을 하는가 하면 불을 쓰는 더운 주방에 에어컨 온도를 낮게 설정하면 말도 없이 온도를 올리거나 꺼버렸다.돌솥밥을 준비했는데 덥다며 갑자기 공깃밥을 내놓으라고 지시하고 본인과 가족이 먹겠다며 행사 음식을 가져가기도 했다. 

대사 부부의 휴가 기간에 만두 500개를 만들라고 했는데 일정이 겹쳐 다음 주에 만들겠다고 했더니 휴가에서 돌아온 사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심하게 괴롭혔다. 

A씨는 근무시간에 맞게 업무조정을 하는 것은 요리사의 결정권이라고 항의했지만 사모는 "얻다 대고 말대꾸냐"고 호통을 치며 "이제부터 매일매일 뭐 할 건지 업무보고 하라"고 했다.

호칭도 전임 대사 부부는 8년차 전문 요리사인 A씨를 '쉐프'라 부르며 예우했지만 지금의 대사 사모는 '당신'이라 부르며 삿대질도 예사였다고 한다.

참다 못한 A씨는 대사관 담당 서기관에게 근로계약서의 당사자가 아니고 대사관 직원도 아닌 사모가 요리사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느냐고 질의했다.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사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사모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A씨는 대사를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대사는 사모의 생각은 곧 자신의 의견이라며 못 견디겠으면 그만 두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그 뒤 사모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A씨는 이달 초 사직서를 냈다.

이처럼 해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장갑질119를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국이 직장갑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직장갑질119에는 하루 평균 20건의 직장 내 괴롭힘의 민원이 접수되는데 지난 7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이후에는 하루 평균 104건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직장갑질119는 해외 공관의 행정직원, 관저요리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대사 부부와 가족이 멀리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내 엄벌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데일리중앙>과 통화에서 "대사 사모가 사용자나 마찬가지로 세세하게 업무 지시를 해 A씨는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대사한테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힘이 든다고 얘기했는데 그때라도 대사가 사용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문제가 더 커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거나 그 노동자의 마음도 누그러질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대사가 결정적으로 '사모의 의견이 내 의견'이라고 한 것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은 방법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최 노무사는 "문제의 상황이 계속됐고 그걸 사용자인 대사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문제를 방치한 상황, 이것 자체도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은)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조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직장갑질119는 150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갑질을 당하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무료로 활동하고 있는 민간 공익 단체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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