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백선엽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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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백선엽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0.07.13 12:52
  • 수정 2020.07.13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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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가진 어느 국민이 친일부역자의 국립현충원 안장을 납득하겠나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10월 동평양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백선엽. copyright 데일리중앙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동평양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백선엽 준장(가운데).
 * 이 파일은 대한민국에서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임.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백선엽씨를 국립현충원에 묻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백선엽씨는 일제강점기에 간도특설대 중위로 복무하며 침략전쟁에 부역하는 등 친일 전력이 명백하다. 

간도특설대는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이 1938년 팔로군, 조선의용군 등 항일 무장세력 토벌을 위해 조직한 특수부대다. 항일 독립군을 상대로 기동타격, 공작, 정보, 심리, 매복, 추격, 섬멸 작전을 하던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특수부대였다.

백선엽은 1993년 펴낸 <간도특설대의 비밀>에서 간도특설대 활동에 대해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우리가 전력을 다해 (항일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썼다.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인정한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반공 전사로 재빨리 변신해 이승만 정권에 협력하며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등 입신양명을 꾀했다.

그 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에 부역하며 일평생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살다가 지난 10일 100살을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별을 네 개 달며 대장 진급과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을 지냈고 퇴역 후에는 교통부 장관중화민국·프랑스·캐나다 대사 등의 외교관을 지냈다.

그는 이처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자신의 반민족 행위와 과오에 대해서는 끝내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았다.

민족해방을 위해 독립투쟁과 만세투쟁을 벌이던 독립투사를 토벌하던 사람에게 국립현충원이라니 상식을 가진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나.

친일 부역자를 가려내 단죄해도 모자랄 판에···.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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