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시론] 우리는 언제 이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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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론] 우리는 언제 이겼을까
  • 데일리중앙 기자
  • 승인 2011.11.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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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버스 승객들에게 드리는 글

▲ 송경동 시인.
ⓒ 데일리중앙
정신없이 봄여름가을이 갔다. 생각해보니 단 하루도 일이 없는 날이 없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눈만 열면 눈물이 쏟아지던 일주일여가 있기도 했다.

이렇게 막막한 시간을 김진숙 선배와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그리고 단식 40여 일 만에 실려내려와야 했
던 신동순 조합원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 아래에서 하루하루 가슴을 태우며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힘들 때마다 그들과 희망의 버스를 지켜주는 승객 여러분들을 생각했다. 함께 일하며 몇 달 동안을 낮밤없이 피로감에 지치면서도 굳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깔깔깔 벗들을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엔 병원에 있었다. 기륭전자비정규 투쟁 당시 포크레인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구미KEC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두 분이 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GM대우비정규직들이 정문 아치에 오르고, 부산에서 김진숙 선배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는 소식과 대우조선비정규직 강병재씨가 고공철탑에 올랐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그때마다 이 시대에 대한 싸늘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몄다.

특히 김진숙 선배가 오른 85호 크레인은 93년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매달고,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떨어져 죽은 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후 8년 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는 김진숙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올라갔을까, 간담이 서늘했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재능과 쌍용, 콜트콜텍, 발레오, 유성, 전주버스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85호 크레인 그곳은 그냥 단위사업장의 어느 한 곳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지난 서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곳이었다. 최소한의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다. 다시는 절망의 무덤이 되지 않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그 모든 분노와 안타까움이 모여 만들어졌다. 누구 몇 사람이 기획하고, 제안한 게 아니다. 실제 희망버스가 기획된 곳도 쌍용과 재능과 콜트콜텍 등의 농성장이었다. 연대에 목말라 본 우리라도 저 외로운 85호 크레인에 연대하자가 시작이었다. 실제 1차 희망의 버스의 주동력은 그간 그렇게 싸워왔던 현장의 동지들이었다.

기륭과 동희오토, GM대우, 홍대 등 청소노동자투쟁, 그리고 용산과 두리반 등에서 싸움을 함께 지키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진정성이 희망의 버스의 엔진이었고, 주원료였다.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들이 참 많다. 희망의 버스는 깔깔깔이라는 유쾌한 형태를 띄었지만, 안으로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민중의 눈물이 가득찬 눈물의 버스였다. 1차 당시 공장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던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눈물, 3주만에 인권버스, 성소수자버스, 반값등록금버스, 교수학술, 문화예술인버스, 보건의료, 종교인, 촛불시민, 철거민 버스 등 실제로 전국에서 193대의 버스가 만들어지던 2차의 순간들···.

하루 40km를 걸어내려가던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소금꽃 천리길의 사람들, 다시 쌍용차 가대위들이 한진 가대위 분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시켰던 희망의 열차, 황금같은 휴가를 반납하고 몰려든 1만2000여 명의 사람들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던 3차, 걸어걸어 새벽까지 산복동 고개를 넘어가던 사람들, 4차때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이 조직되던 과정-.

그간 십수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고공농성에 들어가야 했던 노동자들의 100명의 연대, 그리고 이름없이 희망의 버스를 함께 지켜주었던 지역 희망의 버스의 승객들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일들.

그 모든 이들의 뜨거움이 일순 한국사회의 지형을 바꿔나갔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이겨왔던 지난 반년이었다.

물론 벽도 많이 느꼈다. 앞으로의 과제다. 재벌의 사설경비대가 되어 철통같이 영도를 지키던 경찰들의 차벽과 폭력을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무슨 사회주의 운운하며 막아서던 이데올로기의 벽도 높았다.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훼방버스라고 공격하며, 희망버스의 운동이 한진이라는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악독한 재벌체재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분노로 터져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청와대와 보수수구 언론들의 벽도 완강했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은 있을 수 없다고 발악을 하던 전경련과 경총의 반사회적 저항도 넘어야 했다. 6.27 기만적인 노사협의서라는 합법의 울타리도 넘어야 했다. 무엇보다 지난 십수년 우리 내부를 좀먹어왔던 패배주의를 넘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게 했다. 아니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왔다. 감사하고 존경한다.

2차를 준비하던 때, 가장 크레인에 대한 탄압이 강경했을 때,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했다고 하던 크레인 농성자 박성호의 전언을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악물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들의 강고한 투쟁을 받아 우리가 예까지 함께 왔다. 희망의 버스는 그런 우리 모두의 공동운명체였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 투쟁한 당사자들이었다. 그 모든 승객들 한 분 한 분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승자들이었다. 그 분들이 앞으로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열어가는 소중한 연대의 힘들이 될 것임을 믿는다.

잊지 말 것은 희망의 버스는 이제 막 출발한 새내기 버스라는 것이다.

십수년동안 자행된 수백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900만명에 이른 비정규직 노예노동 체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사회적 연대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다시 19분이 죽어간 쌍차로 가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던 어떤 벗의 이야기처럼,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우리 곁으로 내려오던 그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에게서는 열아홉번째의 죽음이 발견되었다. 전화를 드린 문정현 신부님은 그 순간에도 강정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이라고 경황이 없다고 했다.

이 억울함을, 이 분노를, 이 참담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최소한의 조직도 없어 이름없이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짓밟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노동과 삶의 고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1400일을 싸우고도 다시 100일 결사투쟁을 결의했다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한을, 5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의 기타만들던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다시 잘려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단 한순간도 희망의 버스가 질 것이라고, 수많은 김진숙들이 질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멈추지 말고 다시 함께 달려가자.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기획자들이 되어주자. 이곳으로 가자고, 저곳으로 가자고, 서로 먼저 제안해주고, 실천해 가자. 1%에 맞선 99%의 승리는 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우리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꿈을 잃지 말자. 과거의 썩은 관념들과 잔해들로부터 탄압을 한번씩 더 받을 때마다 나의 우리의 영혼이 한층 더 맑아지고 밝아지는 일이라는 기쁨을 잃지 말자!

다시 한번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했던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하나 있다. 물대포도, 최류액도, 경찰의 차벽도, 온갖 허위 이데올로기와 어떤 구조적 벽들로도 그 눈부신 힘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소박한 순간들이다.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권력도 명예도 아닌 이것뿐임을 기억한다. 희망의 버스의 어떤 구석 자리든 한 자리는 꼭 나의 자리여야 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더 기운차게, 밝게, 뚜렷하게, 투철하게 미래를 위한 모든 이들의 투쟁에 함께하겠다.

한 명 한 명이 밝은 빛이 되어 이 모든 과정 지켜내 준 나의 소중한 깔깔깔 벗들에게, 그리고 묵묵히 나를 다시 지켜준 관호와 수정에게 고맙다는 말을 내려놓는다. 자, 이제 다시 웃으며, 끝까지 투쟁이다.

☞ 송경동(시인·희망의버스 기획자)

데일리중앙 기자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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