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사 선서' 짓밟은 박상옥, 대법관 자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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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검사 선서' 짓밟은 박상옥, 대법관 자격없다
  • 김인회 기자
  • 승인 2015.03.1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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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걷어내고 진실 공평 추구' 맹세해 놓고 고문치사 축소은폐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회 교수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웹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단비칼럼 52'의 전문을 미래연의 동의를 얻어 데일리중앙에 싣는다.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이다. 필자인 김인회 교수는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미래연 부원장을 맡고 있다. - 편집자 주

▲ 지난 2월 17일 신영철 대법관 퇴임 이후 대법관 공석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야권이 박종철씨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건 개입 의혹을 제가하며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 데일리중앙
대법관의 공석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 퇴임일은 2015년 2월 17일. 새로운 대법관이 2월 18일 임명되어야 했으나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무려 1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대법관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국회 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조차 진행되고 않고 있다.

법률가로서 대법원의 공석사태는 가슴 아픈 현상이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야 하는 대법원이 제대로 구성되고 작동되지 못하는 현실은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법치주의의 위기는 여러 곳에서 확인되지만 대법원이 제대로 구성되지 못하는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원래 단독으로 재판하지 않고 여러 대법관이 합의제로 재판한다. 그래서 혹시 14명의 대법관 중 한명이 없어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법관 한명 한명은 모두 나라의 최고법관으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한 사람이 없으면 한 사람만큼, 두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만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힘은 약해진다. 법률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만큼 급한 일도 없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받는 대법관 후보자

박근혜 정부는 이상하리만큼 인사를 못한다. 2명의 후보가 낙마하고 어렵게 이완구 의원이 국무총리로 취임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인사다. 갈등과 충돌 없이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다. 

이번 대법관 공석사태 역시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서 비롯되었다.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수사검사로서 사건의 축소은폐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박상옥 검사는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여 죽인 경찰을 수사했다. 수사과정에서 검사들은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증언을 확보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적극적인 수사는 없었다. 사건의 실체는 축소되었고 축소를 주장한 상관이 버젓이 복직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폭로하기까지 수사가 진행되지도, 외부에 발표되지도 않았다. 심각한 부실수사, 축소수사, 왜곡수사였던 것이다. 검찰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이후 본격적으로 수사를 한다. 이를 두고 후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찰 또한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직무를 유기하여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다가 국민에게 은폐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추가 공범을 포함 치안본부 관계자 등 은폐에 가담한 책임자를 최소한만 기소하여 결과적으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을 방조하고 은폐한 잘못이 있다." 

'박종철'로 6월 항쟁이 시작되었고 대한민국을 바꾸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은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바꾼 사건이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국민은 분개했고 시위에 나섰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위대한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되었다. 6월 민주항쟁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완전히 민주화된 국가는 아니었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민주화된 국가를 만들었다. 새로운 헌법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를 살았던 모든 시민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더라도 가족이나 친구, 친척들이 관련되어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전 국민적 에너지가 폭발했다. 1980년 이후의 모든 정치적 사건은 6월 항쟁으로 수렴했고 이후의 정치적 사건은 6월 항쟁에서 파생되었다. 일부 정치학자들이 현행 헌정체제를 ‘6월 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에 박상옥 후보자도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사건의 축소은폐 의혹의 정중앙에 있었던 것이다. 사건 당시 말석검사라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시민의 자유와 인권에 관한 한 검찰총장을 포함한 모든 검사는 평등하다. 모두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검사는 오로지 진실에 근거하여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야 하는 존재이다. 만일 이번에 말석검사라고 면죄부를 받는다면 대법관이 된 뒤에도 말석 대법관이라 선임 대법관이 시키는대로 판결을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박상옥 후보, 고문치사 축소은폐 개입한 순간 법률가 자격 잃어 

박상옥 후보자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축소은폐조작 사건에 개입되는 순간 검사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적극적으로 사건을 파헤치지 않고 축소은폐를 방관하기로 한 순간 법률가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박상옥 후보자도 검사가 될 때 다짐했을 것이다. 진실을 밝혀 범죄자를 처벌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위로하며 시민과 국가를 보호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아마 선서도 했을 것이다. 선서의 내용은 지금 검사들이 하는 선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요즘 검사들이 하는 선서의 일부이다. 박상옥 검사는 자신이 한 선서를 어겼다.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이지 못했다. 그는 진실의 축소은폐에 가담했든지 아니면 진실에 눈을 감았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던 당시 시민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이지 못했다. 고문 속에서 죽어갔던 한 청년의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한 선서를 무겁게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바른 검사이지도 못했다. 검사로서의 정체성, 법률가로서의 인생을 부인한 것이다. 

전임 대법관은 재판 독립성 훼손, 후임에는 고문치사사건 수사검사? 

▲ 김인회 인하대 교수는 미래연에 기고한 '단비칼럼'을 통해 '검사 선서'를 짓밟은 박상옥 후보자는 대법관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 데일리중앙
법관이 되면 법관선서를 해야 한다. 선서에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법관윤리강령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 나간다."

검사 선서를 무시한 검사가 갑자기 법관이 되어 법관 선서는 준수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그리고 그 여부를 청문회에서 따지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이미 사실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도덕성과 능력을 검증하는 곳이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된 행위를 반성하고 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곳이 아니다. 청문회 자체가 부적절한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 경우일 것이다. 

박상옥 후보자는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법률가들이 신영철 대법관의 제청과 임명에 반대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당시 신영철 대법관은 법관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의혹을 넘어 상당히 확실한 사실이었다. 최고법관 후보자가 사법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법관이 되었다. 그 후임으로 이번에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있는 인사가 후보로 추천되었다. 이번에도 많은 법률가들과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6년 전의 상황과 같다. 마치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 같다. 다만 그 끝은 다를 것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축소은폐의혹이 훨씬 중하다. 박상옥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든지 아니면 대법원장이 제청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인회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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