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라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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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라진 5.18
  • 김신동 기자
  • 승인 2015.05.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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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동(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 칼럼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현안과 정책 제81호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쓴 김신동 교수는 한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사전 양해를 얻어 김 교수 칼럼의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 편집자 주

▲ ⓒ 데일리중앙
아베와 5.18

5.18 민주화운동이 한국민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35주년을 맞은 5.18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여전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5.18 기념재단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5.18의 성격에 대해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응답이 57.4%로 가장 높게 나오긴 했으나, ‘불순세력이 주도한 폭력사태’라는 응답이 8.4%,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응답도 1.2%로 10%나 되는 사람들이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심각하다고 본 응답자도 58%에 이르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불순세력 혹은 북한에 의한 폭력사태로 인식하는 국민이 10%에 이른다는 점은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오늘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고, 이에 대한 대책 논의가 공공영역에 의제로 제출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아베와 그가 이끄는 일본 지도층의 과거사 인식이 병들어 있음을 질타하는 비판이 국내외에 거세다. 만약 일본국민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상당수가 종군위안부는 일본군국주의가 강제 동원한 폭력이 아니라 매매춘을 스스로 선택한 여성들의 불미스러운 과거일 뿐이라고 인식하거나, 혹은 불순한 상인들이 획책한 매매춘 사업이라고 인식한다면 어쩔 것인가? 아마도 양식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타까움과 분노를 삭이기 힘들 것이다. 나아가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교과서 등을 날조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유감이지만 아베의 일본 정부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그것이 현대 일본의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성숙도일 것이다. 

5.18과 한국방송

한국으로 눈을 돌려 우리 정부와 사회가 스스로의 역사에 대해 어떤 태도와 행위를 보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국민의 10%가 5.18을 불순세력의 폭력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부족했고 이에 대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비단 5.18 뿐만 아니라 베트남 참전, 4.19, 제주 4.3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지점들이 분명치 않는 역사의 망각 속으로 팽개쳐지고 있는 현실은 오늘의 한국이 앓고 있는 중병의 다른 표현이다.

5.18이 국민의 인식 속에 왜곡되고 또 망각 속으로 밀려나는 이유는 불행히도 근시안적인 정치공학의 결과이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에 대한 집합적 기억은 공적 미디어를 통해 중단 없이 되새겨지고 공유되지 않는 한 잊혀 질 수밖에 없다. 근래 5.18은 우리 사회의 공론장으로부터 사라져버렸다. 미디어가 외면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필자는 지도학생과 함께 1980년부터 지난 2013년까지 5.18에 대한 텔레비전 방송이 어떤 변화를 보여왔는지 조사 분석을 시도하였다. 정권의 변동에 따라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지상파 방송 3사의 5.18 관련 프로그램을 분석하였다. 1980년부터 2013년까지 KBS, MBC, SBS에 방영된 다큐, 드라마, 영화 등 5.18 관련 프로그램의 양이 얼마나 되는 지 보는 것이었다. 5.18 관련 프로그램들이 매년 5월 전후로 편성됨을 고려하여 실제 조사일은 매년 5월 1일부터 31일로 국한 하였다. 5월에 방영된 방송자료가 아닌 경우에는 네이버 라이브러리나 각 방송사의 사이트 검색을 통해 추가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각 정?별로 5.18 관련 프로그램 편성에 큰 편차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림 1]은 정권 시기별 5.18 관련 프로그램 수를, 그리고 [그림 2]는 이들 프로그램의 총 방영 시간을 보여준다. 

▲ [그림1] 정권별 프로그램 방영 프로그램 수.
ⓒ 데일리중앙
▲ [그림2] 정권별 프로그램 방영 총시간.
ⓒ 데일리중앙
기억하기와 기억 지우기

두 표를 통해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1980년 이후 2013년에 이르기 까지 5.18 관련 프로그램 방영은 두 개의 패턴으로 양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두환 및 노태우 정권에서 5.18 관련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도 좋은 수준이다. 김영삼 정권에서 5.18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사법처리 되는 광주 청문회 정국에서 프로그램이 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5.18 관련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방영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5.18 프로그램 방영은 전두환, 노태우 시기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결국 크게 보면 5.18이 방송에서 사라진 시기와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로 대별된다. 전두화,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5.18은 공공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지게 되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기억해야할 역사로 소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규명은 물론이고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다큐, 드라마, 영화 등 모든 것이 방영되지 않았다. 또한 정권이 장악한 미디어를 통하여 광주 민주화운동을 불순세력에 의한 폭력 사태로 적극 왜곡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신군부는 교과서도 조작하였다. 1982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5.18을 다루지 않은 채 10.26사태 이후 한 때 혼란사태가 계속되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 부문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한다고만 적고 있으며, 제 5공화국 성립의 정당성과 개혁성만을 부각시켰다.1)

1989년 2월 3일, MBC에서 광주민중항쟁 특집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를 방영하였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다큐멘터리로는 최초이다. 이어 KBS는 <광주는 말한다>를 3월에 방영하였다. KBS의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정부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방송통제에 정권의 운명을 걸다시피 하였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바로 ‘KBS 사태2)’와 ‘KBS 4월 투쟁’이다. KBS 사태로 인해 서영훈 사장의 사퇴와 서기원 사장 취임은 파업을 불러왔고, 노태우 정권은 경찰을 투입하여 4월 투쟁을 진압하였다. 결국 KBS는 전두환 정권 때처럼 정권에 예속되었으며 89년 이후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단 한 편도 방영하지 않게 된다. MBC의 경우는 어머니의 노래 이후 90년도에도 PD수첩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으나 역시 91년부터는 방영을 중단한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에는 전보다 많은 5.18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최초의 문민정부로서 김영삼 정권은 5,6공 청산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떠안고 출범하게 된다. 1995년 11월 16일 노태우 전대통령이 거액 수뢰혐의로, 12월 3일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12·12와 5·17 주도혐의로 각각 구속수감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2.12쿠데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경진압에 대한 국민의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졌으며,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를 ‘역사 바로 세우기’로 규정했다. 국회는 12월 19일 신한국당, 국민회의, 민주당 3당 합의로 5.18 특별법을 제정, 처벌 근거를 마련했다.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12년의 형량이 확정되었으나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전대통령이 국민대화합의 명분으로 관련자를 모두 특별사면 함으로써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 2년 만에 면죄부를 받아 들고 출옥하였다. 김영삼 시기 5.18에 대한 방송의 접근은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서로 화해와 용서로 끌어안자는 타협의 메시지가 주종을 이룬다.

국민의 정부 시기에는 이 전에 비해 확연히 증가된 민주화운동 관련 프로그램이 제작, 방영되었다. 1996년 개봉한 영화인 <꽃잎>도 KBS TV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다큐, 드라마, 범죄/수사 등 다양한 장르의 민주화 운동 관련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 SBS의 경우 1999년 <멍에>를 방영하였는데, 이는 가해자를 피해자로 조명한 첫 다큐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가장 많은 5.18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기록을 남겼다. 보도횟수의 경우 국민의 정부 시기에 비해 약 2배, 후임 이명박 정권 시기보다 약 6배 가량 많았으며 보도시간의 경우 각각 약 100분 및 500분 가량이 많았다. 그러나 정권 말미인 2007년도에는 MBC에서만 한편이 방영되고 KBS에서는 5.18 방송이 사라지게 된다.

이명박 정권 시기에 김재철 사장 등장 이후 MBC에서는 시사다큐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2010년 두 편 이외에 광주민주화운동관련 프로그램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KBS의 경우도 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만 방영했으며, 이 내용 역시 과거 정권의 잘못을 규탄하기 보단 이제는 잊고 다같이 잘살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 하던 해에 이 분석은 그쳤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알 수는 없으나, 대체로 이명박 시기와 차이가 없다.  

5.18과 역사 투쟁

왜 국가와 사회는 스스로에게 가해진, 혹은 타자에게 가했던 잔인한 행위를 부인하는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의 잔혹한 경험을 부인하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광범위하며 비일비재하다. 아울러 억압적 권력의 부인은 다수의 방관을 동반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며, 종국에는 방관자 역시 피해자로 전락하는 경우를 불러 온다. 인권침해 연구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 스탠리 코언은 인권침해에 대한 다양한 부인(denial)을 극복하려면 개인적, 심리적 기제에 주목하기 보다는 미디어와 정치문화를 급진적으로 변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참혹상을 외면하고 회피하지 않도록 하는 문화적 환경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와 종군위안부 문제로 돌아가 보자. 창피한 역사에 대해 수십년 간 사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말미암아 이른바 사죄피로감을 느낀다는 일본은 아베식 극우 기류에 편승하여 인권침해에 대한 적극적 ‘부인’을 선택하고 있다. 적극적 부인이란 코언 식으로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부인하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종군위안부 따위는 없었다는 식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고 단지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데 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유감으로 여긴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다만 해석을 달리 하는 해석적 부인, 즉 종군위안부는 있었지만 꼭 강제 동원한 것은 아니라든지 하는 식의 자의적 해석을 통한 부인보다도 훨씬 수구적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일본 사회 전체가 암묵적이며 문화적인 방식으로 부인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의 선택이 거짓이라고 여기면서도 많은 다수의 일본인들은 모른 척 입을 닫는 것이다.

베트남에 대해 ‘모른 척’ 입을 닫는 한국과 한국인들, 5.18에 대해 더 이상 기억하지 말자고 약속이나 한 듯 프로그램을 중단해버린 방송사들도 모두 문화적 부인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선택적 기억을 현재에 복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선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5.18 기념식이 열리는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허용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5.18의 역사적 의미가 뭉개지고 있다. 집권당 대표가 달걀을 맞고 광주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피로 이룬 역사를 너무나 뻔뻔하고 안이하게 ‘부인’의 수렁으로 던져버리려는 것에 대한 인민의 저항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자국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쟁취사를 왜소하게 축소하고 망각의 늪으로 밀어 넣으려 애쓰는 모양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베트남에 파병한 이유는 베트남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강변한 박정희 시대의 기만적 구호를 되풀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짓이다.

국가의 역사가 정권의 이해에 따라 기억과 망각을 오락가락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국경일 혹은 기념일로 제정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왜곡과 굴절을 반복하게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최선의 노력으로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킬 책임이 있고, 공영방송을 비롯한 사회의 미디어들도 그 책임을 공유한다. 방송의 경우 프로그램 편성 지침에 국경일과 기념일에 의무적으로 그 정신을 되새기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편성하도록 자율 규제함이 마땅하다. 국가와 사회가 인권침해를 부인하는 한 5.18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베가 종군위안부를 부인하는 한 일본의 사죄는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 무효화 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김신동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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