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자원 수도권 집중... 지역별 병상 불균형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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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원 수도권 집중... 지역별 병상 불균형 심화
  • 석희열 기자·이성훈 기자
  • 승인 2013.06.2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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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병원, 신증축·리모델링 등 병상늘리기 경쟁... '지역별 병상총량제' 도입해야

▲ 주요 병원 병상 수 변화. 자료=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자원 통계핸드북', 2012.
ⓒ 데일리중앙
최근 수도권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병상이 경쟁적으로 증설되고 있다. 특히 일부 대형 병원들은 신·증축, 리모델링, 제2병원 건설 등 병상 늘리기 무한 경쟁에 나서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렇게 의료자원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병상 분포의 지역적 불균형, 자원 낭비 등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일 발표한 <이슈와 논점- 지역별 병상 총량제 논의의 쟁점과 과제>를 통해 병상 공급 과잉 및 수도권 집중에 따른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병원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환자 쏠림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환자가 의료비 외에도 이동을 위한 교통비·숙박비를 포함한 체류비·이동 관련 시간 비용 등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이 지역별로 균등하게 분포돼 있지 않으면 이러한 부가적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경제적 취약계층과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ㆍ노인 등은 사실상 의료 이용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병원 내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환자가 많아지면 보험재정 지출이 늘어난다.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 규모에 따라(종별로) 가산해 진료비를 지불하기 때문.

따라서 대형 병원의 병상 증설 및 과잉 이용은 궁극적으로 국민의료비 전체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무엇보다도 질병 위중도에 따라 의료기관 기능별ㆍ종별로 적재적소에 분산돼야 할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만 몰리면 정작 위급한 중증환자가 적시에 치료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 민주당 김용익 국회의원은 '지역별 병상 총량제'를 내용으로 하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지난해 10월 발의했다.
ⓒ 데일리중앙
이처럼 병상공급 과잉 및 수도권 등 특정 지역 집중현상, 의료 이용 과다의 문제를 개선하고 나아가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로 병상 총량을 관리하는 시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김용익 의원은 '지역별 병상 총량제'를 내용으로 하는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012년 10월 31일 대표발의했다.

보건의료노조도 대형 병원들의 병상 늘리기 무한 경쟁을 제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지역별 병상 총량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병원마다 신축과 증축, 리모델링, 제2병원 건립 등으로 병상 늘리기 경쟁이 무한대로 펼쳐지고 있다"며 "이를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역별로 인구수와 환자군(특성)을 감안했을 때 적정한 병상수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용익 의원의 '지역별 병상 총량제' 입법 추진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2 병상 수급실태 분석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11년을 기준으로 필요한 급성기병상 수는 21만7020병상인데 실제로 공급된 병상은 23만7274병상으로 2만254개 병상이 초과 공급된 상태다. 이는주로 병원의 병상 증설에 따른 것이다.

최근 5년 사이에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2000병상 규모의 의료기관으로 초대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00명 당 병원 병상 수를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병원 병상 수는 8.8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4.9개보다 높은 수준으로 회원국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

공급 과잉에 따른 병상 이용률의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2006년부터 2010년 기간에 병상이용률은 매년 의료기관 종별로 모두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000병상 이상의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이용률은 평균 91.3%이며, 이른바 '빅5'로 불리는 5개 상급종합병원의 병상이용률은 100%에 이르고 있다.

이들 병원은 병상을 설치하기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예측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병상수를 경쟁적으로 계속 늘리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의 병상 늘리기 경쟁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서울아산병원(2680병상)과 신촌세브란스병원(2087병상)은 이미 2000병상을 넘겼다. 서울대병원(본원) 병상이 1787개인 것과 비교하면 두 병원의 병상 늘리기 무한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일부 병원이 초대형화하는 이면에는 중소규모의 병원이나 지방 의원 등에는 입원 환자를 한 명도 받지 못하는 극단적인 병상 이용률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 주요국의 인구 1000명 당 병원 병상 수(2010년 기준, *는 2009년. 자료=OECD Health Data, 2012)
ⓒ 데일리중앙
2010년 기준으로 전체 병상의 18.1%(9만2650병상)가 의원에 설치돼 있는데 시군 지역의 경우 의원급 기관의 병상 이용률은 30% 미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9년 기준으로 병상을 보유한 의원 6071개소 중에서 입원환자가 없었던 기관이 31.9%(1935 개소)나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병상 분포의 지역적 불균형도 심각한 상황이다.

전국적으로는 병상이 과잉 공급된 상태이지만 지역별로는 과잉 또는 부족 상태로 병상자원 분포가 고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부산시 등 4개 광역자치단체와 의정부시 등 36개 기초자치단체는 병상이 과잉 공급된 지역이고, 안양시·고성군 등 23개 기초자치단체는 병상 부족 지역이다.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지역별로 과잉·부족 지역으로 나뉘어 있어서 병상의 총량도 제한해야 하지만 병상자원을 합리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병상 과잉 현상이 지역생활권역별로 차이고 있고, 수도권 중에서도 편차가 심하다"며 "이런 종합적인 상황을 잘보고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병상 자원관리 입법 현황은 어떨까.

현행의 병상 자원관리 체계는 '의료법' 제60조에 명시된 병상 수급계획의 수립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병상 수급계획과 실제 시·도지사의 병원 및 종합병원 개설 허가가 연계될 수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의료법'에 따른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병상 공급의 증가와 함께 입원 이용량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특히 규모가 영세한 의원의 경우 병상 이용률은 낮고 재원일수는 길어지는 비효율성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의료자원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관점에서 지역별 병상 총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직접적으로 공급자를 통제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신규 진입을 억제하는 규제적 성격 때문에 이해집단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 우리나라 최대 병상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 데일리중앙
병상 총량 규제는 먼저 시장에 진입한 공급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반론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진입한 공급자와 신규 진입자 간에 형평성 시비도 발생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병상 총량제가 정책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과잉 진료 및 국민의료비 앙등 문제가 진입장벽 규제로 발생하는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병상 자원은 총량의 증가도 문제지만 의료기관 종별로 병상 기능이 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따라서 병상자원이 과잉·중복투자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의 확립과 의료기관 간의 기능 재정립이 수반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병상은 설치할 때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투자비용 회수와 관련해 과잉 이용이 유발될 수 있으며, 막상 사용되지 않으면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유휴 병상을 낮병원(day hospital) 등으로 돌려 활용률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정책당국에 제언했다.

석희열 기자·이성훈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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