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도(농부 작가)
하지만 그것이 벌레들에게는 성찬이었습니다. 개미를 비롯한 뭇벌레들이 다 파먹어 형체도 사라지고 빈 거죽만 남았습니다. 물끄러미 그 흔적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희덕 님의 <어떤 출토>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같기도 했다......"
소신공양. 제 몸을 불태워 부처님께 공양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뭇생명들에게 내어주고 형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호박의 이 완전한 소멸을 보고 있자니 시인의 표현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한편으로는 얼마전에 투신한 부산대 교수가 생각납니다. 자신이 믿고 지향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그 교수님 말입니다.
그 분의 투신이 저 호박과 같은 소신공양인지 아니면 무모한 돌출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이 사회와 세상을 밝히는데 기여하는 것인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에 달려 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요.
다만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소신공양이든 돌출행동이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성숙되었으면 하는 것인데...
그것이 실현가능한 현실일지, 아니면 저만의 부질없는 희망일지, 그 또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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