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383] 소신공양
상태바
[태화산 편지 383] 소신공양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8.25 0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밭가에서 풀을 뽑는데 이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늙은 호박이 썩어 문드러진 것이었습니다. 봄에 심은 열댓 포기에서 몇개 달리지 않았는데 그나마 달린 것도 이렇게 썪어 문드러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벌레들에게는 성찬이었습니다. 개미를 비롯한 뭇벌레들이 다 파먹어 형체도 사라지고 빈 거죽만 남았습니다. 물끄러미 그 흔적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희덕 님의 <어떤 출토>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같기도 했다......"

소신공양. 제 몸을 불태워 부처님께 공양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뭇생명들에게 내어주고 형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호박의 이 완전한 소멸을 보고 있자니 시인의 표현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한편으로는 얼마전에 투신한 부산대 교수가 생각납니다. 자신이 믿고 지향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그 교수님 말입니다.

그 분의 투신이 저 호박과 같은 소신공양인지 아니면 무모한 돌출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이 사회와 세상을 밝히는데 기여하는 것인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에 달려 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요.

다만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소신공양이든 돌출행동이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성숙되었으면 하는 것인데...

그것이 실현가능한 현실일지, 아니면 저만의 부질없는 희망일지, 그 또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