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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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출간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0.04.23 18: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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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에서 출판... 총 4부로 나눠 꿈과 격동의 일대기 담아

"2년 동안 커피 한 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를 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화포천 둑길을 함께 걸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은하수가 흐르는 여름날, 벼 이삭에 매달린 이슬에 달빛이 떨어지면 들판 가득 은구슬을 뿌린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사이 논길을 따라 걷곤 했다.

아내는 그때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푹 빠져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두꺼운 소설을 끼고 살았다. 동네에 둘이 사귄다고 소문이 났다. 우리 둘 말고는 처녀 총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소문이 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가 23일 출간됐다. "운명이다"라는 말은 노 대통령이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다.

다음달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노무현재단이 엮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리했다. 돌베개 출판. 양장본 392쪽, 반양장본 364쪽.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본문 332쪽에서 따옴)

자서전은 유년의 기억과 꿈많던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거쳐 정치권에 들어와 대통령이 되기까지 격동의 삶을 숙명처럼 살다간 '인간 노무현'의 굴곡 많은 일대기를 담았다.

대통령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목요연하게 시간 순으로 4부로 나눠 정리한 것이다. 기록을 일관된 문체로 정리하는 작업은 유시민 전 장관이 맡았다.

이번 자서전은 노 대통령 안장식 직후 '봉하 전례위원회'가 유족들의 동의를 받아 유시민 전 장관에게 정본 자서전 형태의 출간작업 정리 집필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유 전 장관은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정리작업에 몰두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변호사 노무현, 인권운동가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은 모두 '인간 노무현'의 일부이다. 그 모두가 하나로 어울려 '인간 노무현'이 되었다"며 "출생에서 서거에 이르기까지 인생 역정 전체를 기록한 자서전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청년시절 고시 공부를 하며 동네 처녀와 연애를 하던 시절을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추억했다.

"2년 동안 커피 한 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를 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화포천 둑길을 함께 걸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은하수가 흐르는 여름날, 벼 이삭에 매달린 이슬에 달빛이 떨어지면 들판 가득 은구슬을 뿌린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사이 논길을 따라 걷곤 했다.

아내는 그때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푹 빠져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두꺼운 소설을 끼고 살았다. 동네에 둘이 사귄다고 소문이 났다. 우리 둘 말고는 처녀 총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소문이 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서로 사랑해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7년 무사독학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아내가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물범벅이 되어 엉엉 울었다.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은 벌레가 사람이 된 것만큼이나 큰 사건이었다. 돼지를 잡고 풍물을 치면서, 일주일 넘도록 마을 잔치를 벌였다"고 당시의 감격을 떠올렸다.

노 대통령은 대전지법에서 처음 판사생활을 시작해 1년도 안 돼 그만둔 일, 변호사로 개업해 첫 수임 의뢰자가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느냐"고 힐난하던 일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했다.

이어 부림사건 등 당시 최대의 시국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일대 전환했다. 이 시기 문재인 변호사(전 청와대 비서실장)를 정치적 동지가 된 사연도 공개했다.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노 대통령은 1989년 5공청문회에서 단숨에 스타 정친인으로 떠올랐다.

이후 김영삼 총재가 1990년 노태우, 김종필씨와 손을 잡고 3당합당을 감행하면서 김 총재와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노 대통령은 3당합당에 대해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은 보수 정치세력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인연과 평가도 소개했다.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조직의 탁월한 보스'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1990년 의원직 사퇴 파동 때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2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건네며 '어디 가서 낚시라도 하며 심신을 달래라'고 위로했던 사연을 소개하며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어 부하로 만드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라고 극찬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그냥 민주투사가 아니고 뛰어난 사상가였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지식을 전략적으로 요령 있게 활용하는 지혜까지 지닌 특별한 지도자였다. 국민들이 그것을 잘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후 5년에 걸친 대통령 시절과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와 겪게 되는 삶의 애환,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세상과 작별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가공없이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을 정리한 유시민 전 장관은 에필로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고 추억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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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2010-04-23 21:23:47
잘못된 글자를 맞춤법에 맞게 고쳤습니다.
이러한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또 고민하겠습니다.

최종환 2010-04-23 20:47:26
맞춤법 좀 고쳐서 올리시지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좀 그렇지 않나요?
점검 안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