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낳았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여전히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1969년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그 후 정주영 회장의 수행비서로 그림자 역할을 했던 이익치 전 회장. 7,80년대 현대건설 신화와 현대중공업 설립에 핵심적 임무를 수행했다.
건설통인 그는 "금융은 건설이다"를 외치며 1990년대 현대해상화재보험, 현대증권을 맡아 그룹의 금융산업부문을 발전시켰다. 그가 만든 '바이 코리아' 펀드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흔들렸던 우리 주식시장에 일대 변혁을 몰고왔다. 업계 하위에 머물렀던 현대증권을 일약 최고 수준으로 도약시키는 성과를 이뤄낸 것도 그의 이러한 경영 철학과 역동성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소떼 방북'을 연출해 내며 남북 교류에 물꼬를 튼 현대그룹의 대북사업도 이익치 회장의 구상에서 비롯됐다는 후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대 방북단에 "이익치를 꼭 데려오라"고 주문했을 만큼 그를 각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현대그룹 경영권이 2세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MH(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편에 선 이익치 회장은 "그것이 정주영 회장의 뜻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MH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이익치 회장과 MH의 관계는 무척 두터워 보였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하지만 무리한 대북사업에서 벌어진 경영악화, 그리고 대북송금 특검이 있은 후 빚어진 MH의 자살 사건 등으로 이익치 인생에도 먹구름이 몰아 닥쳤다. 이 회장 재직 시절 벌어졌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장장 12년에 걸친 기나긴 소송을 불러왔고, 현대가와의 깊은 앙금을 뒤로 하고 두 차례 옥살이와 재산 압류 등의 고초를 겪었다.
사상 최고 수준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현대전자 사건은 당시 현대그룹 오너 일가가 이를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음에도 이익치 1인의 희생으로 끝났다. 당시 언론과 관련 업계에서는 이구동성으로 검찰과 재판부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익치 전 회장은 20일 채널A 시사토크 프로그램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작심 발언을 할 예정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방송은 이날 오후 4시50분.
송정은 기자 beatriceeuni@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