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삼척 무장공비 유격대 120명이 공포 분위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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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삼척 무장공비 유격대 120명이 공포 분위기 속에서?
  • 이성훈 기자
  • 승인 2014.02.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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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화제를 몰고 있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유격대 활동거점 구축을 목적으로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그 해 1월 청와대 폭파를 목표로 서울에 침투하였던 북한민족보위성정찰국 소속의 124군부대였다고
 
이들은 침투지역 일원에서 공포분위기 속에서 주민들을 선전·선동하는가 하면, 양민학살 등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무장공비들은 군복·신사복·노동복 등의 갖가지 옷차림에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지닌 채 주민들을 집합시켜서 북한책자를 배포, 북한의 발전상을 선전하는 한편, 정치사상교육을 시키면서 ‘인민유격대’ 가입을 강요하였다.

울진군 북면 고숫골 의 경우, 11월 3일 새벽 5시 30분쯤 7명의 공비가 나타나서 “경북경찰대에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주러 왔다.”라는 말로 마을사람들을 모은 다음, 사진을 찍고 위조지폐를 나누어 주며 사상선전을 하고 유격대지원 청원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 때 이 마을에 나타난 양양군 장성읍에 거주하는 전병두(32세, 노동)를 대검으로 찔러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지역에서의 만행도 잇따랐다.

힘겨운 주민 신고 이후 당국은 11월 3일 오후 2시 30분을 기하여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대간첩대책본부의 지휘 아래 군과 향토예비군을 출동시켜 소탕전을 벌였다.

소탕작전 결과 11월 16일까지 사살 31명, 생포 2명의 성과를 올렸으며, 연말까지는 침투했던 공비 대부분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공비에 의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과 소탕작전중 전사자는 모두 18명이었다.

이성훈 기자 hoonls@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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