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정한 모텔, 여성 피해자의 임시숙소로 부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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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정한 모텔, 여성 피해자의 임시숙소로 부적합
  • 김용숙 기자
  • 승인 2017.11.06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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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 바람의 여성을 한밤중에 모텔로 안내는 또다른 피해... 정춘숙 "여성긴급피난처로 연계해야"
▲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6일 여성 폭력 피해자의 임시숙소로 경찰이 지정한 모텔 등은 부적합하다며 "전문 상담사가 있는 여성긴급피난처로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김용숙 기자] # A씨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잠옷바람으로 집을 도망쳐 나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복을 입은 남자 경찰관이 하루 머물 수 있는 임시숙소라며 모텔로 안내했다. A씨는 남자와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이 볼까봐 너무나 불안했다.

이처럼 전국 190개 숙박업소(호텔·모텔·여관)가 범죄 피해자 임시숙소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피해자 임시숙소는 숙박시설을 지정해 가정폭력 등 범죄 피해자가 위험을 피해 1~5일 간 머물 수 있도록 경찰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2014년부터 경찰서별로 1개 이상씩 설치를 추진해 지금은 전국에 292개의 임시숙소가 운영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6일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2015~2017.7) 간 임시숙소를 이용한 건수는 총 1만1987건으로 가정폭력 피해자가 85.5%(1만254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스토킹, 성폭력, 강력범죄 피해자들이었다.

문제는 임시숙소 이용은 거의 다 한밤중에 이뤄지고 대부분 남성 사복경찰에 의해 안내되는데 이용자의 94.3%가 여성이라는 데 있다.

모텔에 범죄 피해자인 여성 혼자 숨죽이고 있으라는 게 과연 적절한 가이다.

게다가 여성 피해자가 한밤중에 남성 경찰관과 함께 모텔 등 숙박업소에 들어가는 모습은 또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언급된 A씨는 만약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남편에게 전해지면 의처증세가 심한 남편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고 한다. 그래도 당장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에게 더 괴롭힘을 당할 것을 알기에 경찰을 따라 모텔로 들어갔다.

경찰은 숙박만 체크하고 방을 알려주더니 바로 가 버리고 혼자 남은 A씨는 복도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밤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잠깐 누웠다 눈을 뜨니 날이 밝아 있었다.

이튿날 잠옷만 입은 채 모텔을 나오는 A씨의 기분은 어땠을까. 여성으로서 너무나 참담했을 것이다.

지난달 3일 창원에서는 경찰이 가정폭력으로 오인해 임시숙소로 지정된 모텔로 안내한 30대 여성이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술에 취해 있던 피해자는 가족들에게 SNS를 통해 자신이 감금당했고 '남자들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고 전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경찰이 떠난 직후 창문을 통해 모텔을 나오다 4층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텔 등의 임시숙소는 여성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부적합하다. 범죄에 노출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피해자를 아무나 들락거리는 일반 숙박업소에 투숙시킨 뒤 경찰은 곧바로 철수한다면 그게 무슨 임시 보호소겠냐는 것.

혼자 남은 피해자는 불안에 떨게 되며 자살, 추락, 침입 등 긴급사태에 대비하기도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청에서는 1366(여성긴급전화) 등이 운영하고 있는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피해 여성을 위한 긴급쉼터와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2015년 7월 전국 경찰서에 '피해자 임시숙소 지원 관련 지시사항 하달'이라는 공문을 보내 가정폭력 등 여청 소관 피해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366 등 타 기관 보호시설로 연계를 철
저히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창원 사건의 경우 경찰관은 보호시설에 문의하지 않고 피해자를 곧장 모텔로 안내했다고 한다. 그 시각 창원에는 해당 경찰서와 차량으로 30분 거리 안에 1366과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24시간 긴급피난처 2곳이 있었다.

정춘숙 의원이 경찰청과 1366에서 제공받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에는 임시숙소 이용 건수보다 경찰이 1366 긴급피난처에 연계한 건수가 460건 더 많았다.

그런데 올해(7월 기준)는 긴급피난처 연계건수가 임시숙소 이용 건수보다 1000건이나 적어졌다. 제주 지역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1366으로 연계하고 있지만 대구나 경남의 경우 연계 비율이 20%대로 상당히 낮다.

정 의원은 "여성 폭력 피해자들은 그 특수성에 맞는 전문기관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에 1366과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여성 긴급피난처는 모두 34곳. 그곳에는 상담원이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특히 1366 긴급피난처에는 밤에도 상담원 2명이 근무하고 있고 차량으로 피해자를 인계받을 수 있는 상황이며 자녀 동반도 가능하다.

의료 지원도 가능하고 상담소와 쉼터 연계도 곧바로 이뤄진다. 무엇보다 현재 피해자의 상태를, 여성폭력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함께 있는 곳이다. 경찰이 지정한 모텔 등 임시 숙박시설보다 훨씬 안전한 곳이다.

정춘숙 의원은 "범죄 피해자는 신체적 안전은 물론 존중과 배려받을 권리, 피해회복에 대해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며 "피해자 중심의 지원이 이뤄지려면 전문성을 갖춘 시설로 최대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그러기 위해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의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경찰청과 적극 논의해 다시는 창원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숙 기자 news7703@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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