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혁명적 운동은 맑스보다는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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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혁명적 운동은 맑스보다는 체 게바라"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0.01.26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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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세계 진보정당운동의 현황과 전망' 토론회 열려

 

▲ 올해로 창당 10년을 맞는 민주노동당은 2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세계 진보정당운동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한국의 진보세력이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27일에도 민노당 창당 10주년 토론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사진=민주노동당)
ⓒ 데일리중앙

1990년대 초반, 동구사회주의와 옛 소련이 붕괴되면서 진보진영 내부에는 사회주의논쟁이 불붙었다. 변혁과 개량, 전민항쟁과 선거를 둘러싼 논쟁은 이후 시민사회논쟁과 제3의 길, 복지국가 논쟁 등으로 옮겨 붙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2004년 원내 진출은 급진적 계급혁명 대신 선거를 통해 점진적 체제 전환을 이루려는 사회민주주의적 전망이 승기를 잡는 듯 보였다.

그러나 1998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이후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새롭게 부활하기 시작했다. 남미에서 잇따른 사회주의 세력의 집권과 국제적 연대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하나의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세력은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26일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세계 진보정당운동의 현황과 전망' 토론회에서 나왔다.

올해로 창당 10주년을 맞는 민노당의 부설 새세상연구소(소장 최규엽)가 이날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토론회는 김한성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150분 동안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Eduardo Suplicy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의원과 유팔무 한림대 교수, 안태환 부산외대 교수가 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발제를 했다. 이어 김인춘 연세대 연구교수, 박승호 민주노동연구소 소장, 정성진 경상대 교수, 조원희 국민대 교수 등이 치열하게 토론했다.

사회민주주의를 선두에서 주창하고 있는 유팔무 교수는 "나는 민족자주/녹색/사회민주주의/개혁(NLGSDR)적 입장이며, 이것이 21세기 한국 진보의 방향"이라고 선언하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사민주의 구분법-변혁과 자본주의 체제 순응으로 구분하는 입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사회민주주의를 사회주의의 한 유형으로 볼 것을 주장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민주주의 통해 실현하려는 이념과 세력이며 이것이 제도화된 형태가 사회민주주의 체제라는 것.

남미에서 '21세기 사회주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연구한 안태환 박사는 "우리가 남미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19세기에 자유권적, 생활권적 민주주의의 제도와 관행이 도입된 곳이 남미"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민주주의가 성숙되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중도좌파 정도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면서 "그러나 점진적으로라도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적 연대도 유럽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안 박사에 따르면, 남미의 혁명적 운동은 맑스보다는 체 게바라, 체 게바라 보다는 시몬 볼리바르 안에서 평등적 가치를 찾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남미의 사회주의를 유럽의 시각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토론에 나선 김인춘 연구교수는 "유럽은 자본주의를 세련되게 만들고, 남미는 자본주의와 다른 체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유럽이 온건하고 타협적이었지만 그 결과는 일국적인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평가했고, "남미의 경험은 그 자체로는 매우 훌륭하지만 한국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고 봤다.

박승호 소장은 "유팔무 교수의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개념이 혼란스럽다"며 "사회주의는 계급사회로 규정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철폐를 목표로 하며,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국가 개입을 통한 조절 등을 통해 모순을 완화하는 것을 추구하는 등 이론적, 실천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정치적 내용을 가진다"고 맞섰다.

박 소장은 특히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개량주의 정신을 가지고는 일국적이든 국제적이든 자본에게 수정 자본주의 축적형태 또는 혼합경제 형태도 강제할 수 없다"며 "따라서 개량투쟁과 변혁투쟁을 결합시켜 진취적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이론가인 정성진 교수는 "현존하는 유럽 사민주의는 대부분 제3의 길로 가 있다"며 "유럽국가들의 복지 등의 성과를 제3의 길의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어 "유럽 사민주의의 물적 기반은 자본주의의 장기호황이었고, 70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통해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서 사민주의도 위기에 처한 것"이라며 사민주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진보의 답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오히려 21세기 진보의 새로운 흐름인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정당과 혁명적 대중운동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로 소개하 조원희 교수는 마지막 토론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일 뿐만이 아니라 정통"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오히려 북구의 성과에 주목하면서 여기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수플리시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의원이 참석해 브라질에서 추진 중에 있는 기본소득 정책을 한국에서도 시급히 도입할 것을 주장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민주노동당은 27일에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주노동당 10년과 한국민중의 삶, 그리고 과제' 등을 주제로 창당 10주년 기념토론회를 진행한다.

김주미 기자 kjsk@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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