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파트 경비노동자 사망 400일, 복직투쟁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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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경비노동자 사망 400일, 복직투쟁 100일
  • 송정은 기자
  • 승인 2024.04.21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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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은 현실... 다단계 고용구조·초단기 근로계약에 대응 '막막'
경비노동자들에 대한 괴롭힘 문제는 원청갑질의 문제와도 닿아 있어 
괴롭힘 가해자인 관리소장은 대부분 공동주택 노동자와 달리 원청 소속
직장갑질119 "경비노동자 보호하기 위해선 초단기 계약부터 근절해야"
"더 나아가 경비노동자 고용승계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 필요하다" 주문
직장갑질119는 21일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괴롭힘 문제는 원청갑질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며 "경비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초단기계약을 근절하고 고용승계를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copyright 데일리중앙
직장갑질119는 21일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괴롭힘 문제는 원청갑질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며 "경비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초단기계약을 근절하고 고용승계를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송정은 기자] 지난해 3월 14일 서울 강남 아파트 경비노동자 박아무개씨가 관리소장 갑질을 호소한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씨 사망 이후 그의 직장 동료였던 경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소장의 사과와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31일 경비 노동자 76명 가운데 44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현재 노조는 아파트 쪽의 일방적 해고 통보에 맞서 지난 1월 10일부터 복직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4월 19일은 이 투쟁이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들 경비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람을 죽게 만든 관리소장을 내보내고 해고된 경비원 노동자들은 복직시키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초단기 근로계약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비노동자의 죽음으로부터 400여 일, 그 동료들의 투쟁으로부터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공동주택 및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직장갑질119는 21일 경비노동자에 대한 괴롭힘 문제는 원청갑질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고 밝혔다. 

사실 괴롭힘 가해자인 관리소장은 대부분 공동주택 노동자와는 달리 원청 회사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관리소장에게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경비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용역회사의 경우 현실적으로 관리소장이나 입주민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갑'의 의사에 반해 경비 노동자를 보호하고 나설 가능성 역시 낮다. 

결국 괴롭힘을 당해도 해고 혹은 계약 만료를 감수하고 개인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대응 방법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성희롱 피해를 입었음에도 피해 구제를 받기는커녕 가해자와 함께 일을 그만둘 것을 강요당하고 있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에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4월 15일까지 들어온 신원이 확인된 전자우편 상담 중 아파트 및 각종 시설에서 일하는 경비, 보안, 시설관리,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노동 상담은 47건에 달했다.

상담자들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한 것은 주로 관리소장, 입주민, 용역회사 직원들이었다. 

특히 이러한 괴롭힘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다음날까지 모든 것을 반납하고 나가라'는 통보 ▶'인간성이 좋지 않은 직원은 잘라야 한다'는 막무가내식 항의 ▶'부당한 지시라도 관리소장이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는 용역업체의 강요 ▶'노동청 진정 이후 조용히 계약 만료가 되어 버린 상황'과 같이 고용불안 문제와 그대로 연결되는 경향을 보였다.

직장갑질119는 이런 공동주택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초단기 계약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초단기 계약은 위탁관리업체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경비 노동자를 쉽게 쓰고 버리기 위해 악용하는 계약이라는 것.

관련해 법원은 공동주택 경비노동자의 초단기계약에 대해 갱신기대권을 인정한 적이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관리회사가 7~80개 사업장에서 경비용역업무를 수행하며 대체로 3개월의 근로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경비원을 고용해 왔다"며 갱신기대권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여러 차례 용역업체 변경 때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한 적이 있다. 불안정한 경비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멋대로의 계약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일부 아파트나 위탁관리업체는 자발적으로 초단기 근로계약을 지양한다는 내용 등의 상생 협약을 맺고 있으나 실직적인 효과는 적다는 지적이다.

직장갑질119는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동주택 경비 노동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지자체 차원에서 1년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거나 용역회사 변경 시에도 고용을 승계하는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고용안정 지원금 활성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더 나아가서는 초단기계약을 근절하고 고용승계를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갑질에 쉽게 노출된다"며 "용역계약 구조에서 입주민과 관리소장의 갑질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3개월 이내의 초단기 근로계약으로 인해 계약이 만료되거나 용역 회사 변경 과정에서 계약이 종료될 우려로 인해 갑질에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임 노무사는 "공동주택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상 직장 내 괴롭힘의 범위를 확대하고 초단기 계약 근절 및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통한 고용 불안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정은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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