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노동자 죽음'... 우리네 현실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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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동자 죽음'... 우리네 현실의 슬픈 자화상
  • 김나래 기자
  • 승인 2012.12.22 0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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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통령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절망과 좌절을 표현한 유서 남겨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땅 위에 이런 아픔 다시는 없기를...
ⓒ 데일리중앙
풀렸던 날에 다시 한파가 불어닥치고, 녹았던 땅은 다시 얼어붙었다

21일 오전 8시30분 한진중공업 복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 최아무개(34)씨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4층 노조 사무실 내 높이 1.8m 가량의 비상용 완강기에 스카프로 목을 매 쓰러져 있는 것을 노조원들이 발견,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그는 생을 마감하기 하루 전날인 20일 오후 7시 자신의 휴대폰에 '유서'를 메모해 저장했다. 한진 자본을 향한 분노와 박근혜 당선으로 정권교체에 실패한 현실에 대한 깊은 좌절이 담겨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더 큰 절망 속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누가 이들의 마음을 절망 속에 좌절하도록 결빙시킨 것일까.

아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기간이다.

모든 국민의 다양한 역할과 이해관계 속에 모든 것을 한순간에 마술처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의 '국민행복 중심' '국민을 위해 살겠다'는 그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덤으로 주신 삶'이라 믿고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 진정성을 믿어보자.

설령 5년 내내 실망하는 최악의 상태가 될지라도 우리에게는 더 많은 내일이 남아 있다.

이 순간에도 SNS를 통해 선거 때의 공약은 공약일뿐 이제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부 언론사의 보도가 있다는 괴소문이 돌고 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괴소문'이라고 믿고 싶다.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들만의 의견과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다.

자신들만의  '픽션(허구)'일 수 있다

그것에 일일이 동요하고 절망한다면 우리 삶 자체의 존재 의미가 흔들린다.

수만척의 일본 왜선이 들이닥쳐도 "우리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며 군사들을 독려, 희망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이 우리의 선조이고 우리 안에는 그 피가 흐른다.

모질고 힘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생명을 가슴에 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역사의 증인이 되고 우리를 낳으신 이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임을 잊지 말자.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불은 그 무엇도 꺼뜨릴 수 없는 존엄한 것임을 결코 잊지 말자.

그러나 그들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한 채 이 추위에도 삶을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고단함을 나눠지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은 이 죽음을 통해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격 소식을 접하고 연 첫 말문이 "휴전선은 안전한가"였다고 한다.

그는 개인의 아픔과 슬픔보다 국가와 국민 그리고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의무를 간직하고 살아 왔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전한 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한결같은 평가다.

그 '약속'이 '실천'이라는 기대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중심에서 '국민행복중심'으로 돌려놓겠다고 전한 박 후보는 △서민경제 살리기 △중산층 70%시대 재건 △젊고 유능한 정부 △대화와 타협으로 여야가 함께하는 국정운영 △역대정부가 이루지 못한 국민대통합시대 개척을 다짐했다.

또 "어머니의 리더십으로 계층,지역,세대를 뛰어넘어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더하여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끊어진 기회의 사다리 연결 △중소기업 중견기업의 대기업으로의 성장 환경지원 △빈곤의 대물림 끊기 △일하는사람에 대한 복지지원 확대 △일자리 확대 △저소득
층 학생들의 학습기회 보장 △거대자본 골목상권 침해 방지 등을 통한 '민생정부' 비전을 제시했다.

내 두 손으로 이 기사를 쓴 지 불과 3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절망보다 더 큰 아픔은 없다.

생명력이 희망이다.

'너'로 인해 '나'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생명 안에 '너'와 '나'는 다름이 아닌 같음이다.

김나래 기자 nlkim007@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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