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무장세력 탈레반이 피랍 한국인들을 살해하겠다고 최후 통첩한 협상 마감시한을 불과 10분 앞둔 11시20분. 숨막히는 긴장 속에 가족들의 간절한 통성기도가 이어졌다. 운명의 11시30분. 가족 대표 차성민(피랍 차혜진씨 동생)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차씨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외신 기자 100여 명에게 "아직 협상 중입니다.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아무말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가족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취재진의 질문에는 응하지 않았다.
11시50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협상 시한이 하루 더 연장됐다는 소식이 날아 들었다. 불안과 초조 속에 손톱을 쥐어 뜯으며 두 손을 꼭 쥐고 있던 가족들은 순간 휴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시 가슴 졸이며 고통의 24시간을 견뎌야 한다.
자정이 되자 가족들은 하나 둘씩 재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일부는 시시각각 들려오는 협상 소식을 더 지켜보기로 하고 그대로 남았다.
가족들은 "외교통상부에서 전화를 걸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 왔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채널을 형성하고 열심히 협상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협상시한이 연장됨에 따라 가족들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뒤 24일 오후 2시 한민족복지재단에서 다시 모일 예정이다.
앞서 청와대는 23일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여 유효한 모든 방법과 외교 채널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을 통해 "현지 정부합동대책반을 중심으로 무장단체와 접촉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청와대와 정부는 계속 비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신중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인 피랍자들을 붙잡고 있는 탈레반이 한국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협상시한을 다시 연장함으로써 자칫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