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278] 밭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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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278] 밭갈이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4.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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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한상도 작가는 한대 국문과를 나와 공기업 등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로 귀농한 농부 시인이다. 땅을 일구고 채마밭을 가꾸며 틈틈이 자신의 감성을 글로 표현하는 '태화산 편지'를 쓰고 있다. 한상도 시인의 '태화산 편지'을 데일리중앙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 데일리중앙
개나리 진달래로 산천의 봄이 시작된다면 농촌의 봄은 밭갈이에서 시작됩니다.

지난해 배추를 심어 수확도 못하고 썪힌 밭일망정, 올해도 품값이나 건질지 장담할 수 없을지언정 꼭두새벽부터 골을 내고 두둑을 만듭니다. 밭은 갈아야 하고, 뭐라도 심어야 하니까요. 봄은 또 그런 계절이니까요.

겨울내내 수확도 못한 배추가 썪어가던 밭. 그 밭이 저렇게 갈아진 것을 보면서 희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로 따지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이 지고가야할 운명이요 숙명이라는 것을요.

이 봄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수익에 대한 기대 때문만이 아닙니다. 생명을 가꾸는 보람이나 희열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이 곧 삶이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수익이나 보람은 그에 따른 결과물일 뿐입니다.

따지고보면 그게 어디 농부 뿐이겠습니까? 지금 내가 서 있는 공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또한 정도의 차이 뿐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수확도 못하고 갈아엎을지언정 씨를 뿌리듯 누가 알아주지 않고 보아주지 않아도, 그 가능성조차 희미해 보여도 묵묵히 가야만 하는 길. 생이란 애당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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