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오는 눈은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졌던가.
고즈너기 숨죽인 산중의 봄눈. 교수님과 새내기 재학생이 한데 어우러진 환영회파티. 경건하게 축시 송시가 오가고 산나물 비빔밥에 툭진 막걸리가 인정을 풀어주고 노교수님의 그윽한 샹송이 공간을 누빌 때 우리는 그것 만으로 가슴이 타올랐었지-.
밖에는 봄눈 내리고 그때 우리는 만남 하나만을 축복하기에 여념이 없었지. "사람은 누구나 만남에 황홀해 한다"고 누군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세월은 흘러 30여 년. 왜 이리 그때 그시절이 그리운지. 지난 아름다웠던 추억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겁다.
그시절 입던 청바지를 장롱 옷걸이에서 꺼내 벽에 걸어도 보고 노-트를 꺼내 조용히 그때 내 가슴을 꽉 채워두었던 숙제들을 더듬어본다.
<< 에피파니 : 새로운 각성, 이미 있었던 일을 어느 순간에 새로이 인식, 새로운 감동 종소리 등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그 언젠가 계기가 생겨나면 의식 속에 떠오르게 된다. 어떤 환상적 내지 승화된 이미지로서…. >>
그렇다. 하나의 문학작품에 있어 시간은 때로 역전, 정지될 수도 있다. 정경묘사일 수도 있겠고 작중 인물의 성찰이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니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떨까.내가 봄마다 꺼내볼 수 있는 것, 한번씩 폭풍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지나온 시절에 전율하여 환희에 젖곤 하는 그런 것, 그리고 이내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그걸 나는 임의대로 삶의 '에피파니'라 명명해본다.
지척에 몇 몇 소식 끊기지 않은 친구들을 불러보고 싶지만 한번 이별한 우리라설까. 만남 하나만으로 웃음 주던 그때완 사뭇 달라진 우리들이다. 연연해하기 보단 그냥 한 편의 추억에 기끼워하리라.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으며 부디 설레는 이 계절을 눌러보리라.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