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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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제작
  • 최우성 기자
  • 승인 2015.10.19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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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이야기 주제는 '연대'... 김민·노순택·정택용 등 작가 29명 참여

우리가 함께여서 가능했던 기적은
어디선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 여전히 믿으며···."
[데일리중앙 최우성 기자] "내복도 아니고 두꺼운 양말도 아닌, 볼트를 주머니마다 채워 넣고
크레인을 오르던 영하 13도의 새벽.
희망보다는 절망이,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곳으로 한발 한발 오르며,
이 크레인을 내려갈 때 나는 이렇게 내발로 한발 한발 내려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용역깡패들이 투입되고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무장병력들이 쳐들어 와,
크레인 밑에 있던 우리조합원들의 사지를 들어서 끌어내던 날.
이별이란 단어가 그렇게 사무칠 수가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나에겐 끌려가며 울부짖는 조합원들이,
그들에겐 크레인위에서 울며 소리치는 내 모습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겨지겠구나.

그날 이후 크레인은 완벽히 고립됐다.

크레인을 둘러싼 400여명의 용역깡패들은 수시로 크레인으로 뛰어올랐고,
크레인으로 올리는 밥과 물들은
금속탐지기와 그들의 손에 샅샅이 뒤짐을 당하고야 흩어진 채로 올라왔다.

그렇게 올라오던 밥과 비닐에 담겨 올라오던 물을 보며 서러움보단 치욕감이 앞섰다.
이런 밥을 난 얼마나 더 먹어야 할까.

10분을 이어 잘 수 없었던 잠.
용산에 투입돼 6명을 죽게 했던 특공대까지 투입되며 희망의 부스러기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그만하고 싶었다. 그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익씨가 유서를 세 번을 썼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전기가 끊어진 망망대해의 섬 같던 85호 크레인 위
84호 크레인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특공대들을 보며 첫 유서를 썼다.

129일만 기다렸다.
주익씨가 견딘 129일만 넘기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그래도 129일은 넘겨야 저승에 가서 주익씨를 먼저 찾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내려가는 계단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안 될 일 봐야 마음만 아리지.
계단 하나마다 떠오르던 얼굴들.

대신 미친 듯이 트위터를 봤다.
거긴 딴 세상이었다.
쇠파이프롤 휘두르며 뛰어오르는 용역깡패도, 특공대도 없는 세상.
설레여서 잠을 못자긴 처음이었던 거 같다.

문화패들이 오고, 사람들이 오고, 그리고 희망버스가 왔다.
크레인에 오른 후 처음으로 어쩌면 살아내려 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저 공장 담 밖에서 저토록 간절히 절을 하는 저 사람은 누굴까.
저녁이면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고
주말이면 온종일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저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비가 오는데 하루 온종일을 저렇게 붙박인 듯 한자리에 서 계시는 저 수녀님은 어디 사실까.
잠이 안와 새벽에 택시를 타고 오셨다는 저 신부님은 나이가 얼마나 되셨을까.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던 욕망.
309일 만에 난 살아서 내려왔고 우리조합원들은 공장으로 돌아갔다.

크레인에서 위기상황이 닥칠 때마다 천수보살이 날 받쳐준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연대의 손.
기적 같은 일이다.
끊임없이 찾아오던 발걸음들이 기적이었고 희망버스가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을 만들어냈던 이들의 고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재판으로 벌금으로 고초를 당하는 이들에게 난 견딜 수 없이 미안하다.
혼자 지기엔 무겁고 버거운 짐들을 함께 나누어질 수 있길 바란다.

우리가 함께여서 가능했던 기적은
어디선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 여전히 믿으며···."

'2016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이 제작된다. 2009년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유가족과 작은 연대라도 하고자 시작했으니 벌써 7년째다.

이 달력은 그 후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2010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2011년)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2012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2013년) △밀양·강정·청도(2014년)와 연대를 이어가며 현장사진의 작은 역사를 써 왔다.

'빛에 빚지다-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작가들이 제작하는 2016년 사진달력의 주제는 '연대'다.

▲ 김진숙 당시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2011년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 방침에 반발해 그해 1월 6일부터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40m 높이의 85호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희망버스를 있게 한 계기가 됐다.
ⓒ 데일리중앙
이 사진달력을 넘기다 보면 6월과 7월 사이에 소금꽃 김진숙씨의 글(위)이 보는이들의 가슴을 친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40m 높이의 85호 타워크레인. 김진숙씨는 2011년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 방침에 반발해 그해 1월 6일 영하의 칼바람속에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죽을 것 같았던 땅 위 40m 높이의 고공농성에서 그는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의 손길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꼬박 309일 만에 땅을 밟았다.   

이번 사진달력에는 권하형 김민 김용욱 김흥구 노순택 박김형준 박승화 박종식 신선영 이규철 이명익 이성은 이우기 이재각 이준희 이한구 이현석 임태훈 정다우리 정운 점좀빼 정택용 조우혜 조재무 최우영 최형락 한금선 허란 홍진훤씨 등 29명의 작가가 함께한다.

20페이지로 짜여진 벽걸이형의 2016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은 1만3000원에 일반에 판매된다. 배송비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달력 판매 수익금은 희망의 버스에 연대했던 사람들의 재판을 돕기 위한 재판비용에 쓰인다. 달력은 11월 일괄 배송될 예정이다. (☎ 010-9270-0830)

최우성 기자 rambo435@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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