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52년 만에 무죄... 대법원, 사법살인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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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52년 만에 무죄... 대법원, 사법살인 인정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1.01.21 08: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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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딸 "아버지는 낭만주의자였어요"... 명예회복 및 국가유공자 지정될 듯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이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이다."
- 조봉암 선생의 어록에서

1959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죄 누명을 쓰고 그해 7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이 52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았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는 20일 이른바 진보당 사건(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1959년 사형당한 조봉암 전 진보당 당수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국가가 52년 만에 죽산의 사법살인을 인정한 것이다.

진보당 사건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시나리오의 하나로 군 부대까지 개입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조봉암 선생은 1952년 제2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차점으로 낙선했지만 놀라운 득표로 인해 이승만 장기집권의 큰 장애물로 떠올랐다. 1956년 제3대 대통령후보로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그해 11월 진보당을 창당했다.

1958년 1월 진보당 사건이 터졌다. 조봉암 선생이 북한과 내통해 진보당을 창당하고 국가 변란을 기도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체포된 것이다. 그해 2월 육군 특무부대는 형법상 간첩죄를 추가해 죽산 선생을 기소했다.

조봉암 선생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3심에선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선생이 낸 재심 신청도 기각했다. 이승만 정권은 끝내 재심 신청 기각 바로 다음날인 1959년 7월 31일 사형을 집행했다.

대법원은 재심사건 판결문에서 "진보당은 사회적 민주주의의 방식에 의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작용이나 모순을 수정하려 했을 뿐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로 볼 수 없다"며 "피고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한 원심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봉암 선생의 명예가 회복되고 국가 유공자 지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006년 7월 31일 낮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 죽산묘에서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의 47주년 추모식이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해 열렸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억울하게 사법 살해된 조봉암 선생의 추모식이 열린다.
ⓒ 데일리중앙 석희열
조봉암 선생의 딸 조호정(82) 여사는 언젠가 기자와 만나 "아버지는 제게 조국과 이웃을 위해 늘 선량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상냥하고 자상했던 아버지는 낭만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다"고 추억했다.

이번에 대법원이 심리한 재심사건은 대법원이 2010년 10월 29일 유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재판부는 당시 결정문에서 "군인·군속이 아닌 일반인 조봉암을 국군정보기관인 육군 특무대에서 수사한 것은 위법이어서 재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

앞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조봉암 사건에 대해 `이승만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저지른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선생의 장녀 조호정(82)씨 등 유족은 2008년 8월 재심을 청구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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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2011-01-21 09:03:24
대법원 전원합의부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상상초월 2011-01-21 08:59:56
죽산 선생의 명예를 빨리 회복하여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
유족득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겟느냐.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