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임을 위한 행진곡' 불허... 반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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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임을 위한 행진곡' 불허... 반발 확산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3.05.17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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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 및 5.18단체 정부 행사 불참 선언... 야당 "오월영령 뒤를 따르겠다"

▲ 2004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 5.18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24돌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이 땅의 참민주를 위해 먼저 가신 임들을 위로했다.
ⓒ 데일리중앙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제창'이냐 '합창'이냐의 여부를 떠나 5.18은 북한군에 의해 자행된 폭동이라는 의혹이 있으니 진실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념식을 미루자는 '기념식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거나 5.18 기념식장에서 애국가를 대신해 이 노래가 불려지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등의 선동에 가까운 주장들까지 뒤섞이고 있다.

이번 혼란의 일차적인 책임은 명백히 박근혜 정부의 국가보훈처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박근혜 정부는 보훈처를 앞세워 끝내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배제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가 왜 '이명박근혜정부'라는 비아냥을 듣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보훈처 관계자는 지난 16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기념행사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돼 있지 않고,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의례' 때 애국가 대신 불리는 노래"라며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 식순에 포함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제창'의 형태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은 5.18 유가족들과 광주 시민들이 불참한 가운데 항쟁과는 별 관계과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행사로 전락할 공산이 매우 커졌다.

야당은 강한 톤으로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를 비판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도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 말한 '국민 통합'의 기회를 걷어차버렸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17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끝내 민중들의 5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내쳤다. 민주당은 이 같은 행위를 이명박 정부의 뒤를 잇는 박근혜 정부의 '민주항쟁 역사 지우기'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배 대변인은 "이 노래는 5.18 광주민주항쟁이 지난 2003년 정부행사로 승격된 이후 2008년까지 기념식 본 행사 때마다 제창됐다"며 "민주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광주 정신을 훼손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꿋꿋이 맞서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가보훈처의 '어불성설'을 철회시키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5월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자랑스럽게 부르도록 대통령의 직분을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뒤 총검으로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하고 있다. '피의 광주'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 데일리중앙
통합진보당은 80년 광주영령들의 뜻을 이어 당당하게 그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날 광주 망월동 민주묘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0년 5월 죽음으로 지키고자했던 그날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어야 진정한 오월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는 오늘의 권력이야말로 80년 독재와 다르지 않다"며 "역사와 상식을 뒤엎는 정권에 맞서 오월정신으로 미래를 열겠다"고 오월 영령 앞에 다짐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오늘 5.18민중항쟁 33주년을 맞아 광주는 우리에게 고개숙여 추념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힘찬 팔뚝질로 투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단 한 걸음도 뒤로 갈 수 없다는 단호한 결심이 필요한 때"라며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맞서 오월 영령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밝혔다.

진보정의당 조준호 대표는 망월동 민주열사 묘역을 참배하며 "쿠테타를 일으켰던 전두환 군부독재의 죄과와 잔재세력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민주주의는 그저 주어지는 것도, 저절로 유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역사의 산 교훈이다. 오월 광주의 숭고한 정신을 정의당이 잘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정미 대변인은 "광주로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민주주의를 향한 정신은 '임을 위한 행진곡' 불허로 결코 짓누를 수 없다"며 "아직도 자기 국민을 학살한 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광주의 처참한 기억이 온 국민에게 생생한데, 또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로 아픈 상처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고 박근혜 정부를 강력히 규탄했다.

새누리당도 5.18 광주민중항쟁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민현주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군사정권의 폭압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외친 5월의 광주가 있었기에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가 존재 할 수 있었다"며 "5.18 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이 땅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많은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피 묻은 깃발이 올랐다/ 들판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느냐/ 이 잔인한 군인들의 포효가/ 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왔다/ 너희 조국, 너희 아들들의 목을 따기 위해서//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너희의 부대를 만들어라 나가자, 나가자!/ 그들의 불결한 피를 우리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
하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5.18 기념식이 정부 행사로 승격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본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의례' 때 애국가 대신 불리는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였단 말이냐"고 보훈처에 공개적으로 물었다.

하 의원은 "그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다함께 제창을 했나, 그도 아니면 '주먹을 쥐고 흔들며'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이라도 해야 기념식장에서 제창할 수 있다는 뜻이냐"고 따져 물었다.

"피 묻은 깃발이 올랐다/ 들판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느냐/ 이 잔인한 군인들의 포효가/ 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왔다/ 너희 조국, 너희 아들들의 목을 따기 위해서//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너희의 부대를 만들어라 나가자, 나가자!/ 그들의 불결한 피를 우리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이즈'다.

하 의원은 "프랑스 국민들이 국기를 흔들고 주먹을 휘두르며 이런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전 세계인들이 거의 매일 지켜보고 있다. 침략과 독재에 맞서는 노래는 대체로 전투적이기 마련이다. 노래에 고유한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걸 무조건 부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훈처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하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하나되는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며 "5.18 기념식장에서 5.18 유가족 및 피해자들이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동시
에 제창하는 모습이야말로 '국민대통합'의 상징적인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시민을 비롯한 5.18 관련 단체들은 정부의 5.18 기념행사에는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국민통합'이 갈등과 반목의 '국민 분리'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말하는 '국민통합'이 누구를 통합겠다는 것인지 답해야 할 것 같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서영은/ 곡 김종률/ 노랫말 백기완)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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