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268] 박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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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268] 박비향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3.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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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3월의 마지막 주말, 태화산 자락에도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활짝 피어난 홍매화, 태화산에도 그렇게 봄이 찾아 들었습니다.

작은 가지 하나를 살며시 잡아당겼습니다. 펼쳐진 꽃잎 사이로 배어나오는 진한 향기. 아, 이것이 바로 박비향이구나, 저도 모르게 황벽선사의 한시가 읊조려졌습니다.

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매화가 뼈를 깎는 추위를 겪지 않았던들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은 꽃이나 나물이라도 겨울을 이기고 돋아난 봄꽃이나 봄나물이향도 더 진하고 약성도 훨씬 좋으니까요.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겠지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일어선 사람에게서는 범상치 않은 빛과 향이 뿜어져 나오니까요.

그러고보면 겨울은 동면의 계절이 아닙니다. 향기와 빛깔을 응축하는 잉태의 계절이요,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진통의 시간입니다. 겨울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봄이 달라지니까요.

태화산 자락에도 봄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이 봄 또한 내가 보낸 지난 겨울의 산물일 터, 나는 과연 어떤 겨울을 보냈는지...

잉태와 진통의 계절을 보냈는지, 아니면 그저 동면의 시간을 보냈는지...

코를 킁킁거리며 내 가슴의 향내를 맡아봅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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