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284]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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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284] 길들이기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4.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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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많은 님들이 궁금해 하시는 태산이입니다. 이제는 어엿한 태화산 지킴이가 되어 쉴새없이 주위을 돌아다니며 주인행세를 합니다.

핏줄이 사냥개 계통이라 그런지 몸은 작지만 무척이나 날래고 민첩합니다. 풍기는 이미지처럼 꽤나 영리하기도 합니다. 그런 녀석을 제대로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에 어제는 테니스공으로 훈련을 시켰습니다.

때가 지나 배가 고플 즈음 통에 넣어주던 사료를 한 움큼 손에 쥐고 녀석이 보는 앞에서 공을 집어 던졌습니다. 동시에 손짓으로 가리키며 물어오라 소리쳤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몇번 반복하자 한두번 쫒아가 집어 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료를 보이며 가져오라 손짓했습니다. 제 앞으로 제대로 물어오면 사료를 먹여주고 그렇지 않으면 외면하고 주지 않았습니다.

먹이를 무기로 한 길들이기 학습. 그 효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몇번을 반복하자 녀석도 눈치를 챘는지, 던지기만 하면 쫓아가 입에 물고 달려왔습니다.

그래, 잘했어. 정말 잘했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갑자기, 어쩌면 나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 또한 먹고사는데 얽매여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나 또한 화폐의 유혹에 빠져 저 녀석처럼 누군가 던지는 공을 쫓는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아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그럴 리 있냐! 마음 같아서는 버럭 고함이라도 치고 싶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가 목구멍에서 더 올라오질 못합니다.

지나친 기우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지, 오늘도 시간을 내 녀석을 길들이며 나의 길들여짐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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