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298] 작물과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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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298] 작물과 잡초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5.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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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일부러 심은 작물은 툭하면 말라 죽는데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또 나오니..."

밭에서 풀을 뽑다 지친 이웃 주민의 하소연입니다.

듣고 있던 저도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 역시 수시로 경험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원인을 따져 보았습니다. 왜 잡초는 강하고 작물은 약한지...

제가 내린 결론은 야생과 재배의 차이입니다. 야생의 잡초에게는 환경에 대한 내성이 있습니다. 혹독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했기 때문에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작물도 처음에는 그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수확을 위해 사람들이 뿌려주는 비료와 농약에 중독하면서 내성이 약해졌습니다.

때 맞춰 비료를 주니 양분을 찾아 뿌리를 뻗지 않게 되었고, 농약을 뿌려 막아 주니 병해충과 싸울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안주하면서 본연의 야생성이 사라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존조차 어려운, 의존적인 작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돌아보면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일 말고는 무엇 하나 하는 게 없는 사람, 아내가 없으면 끼니조차 잇지 못하는 사람, 혼자 있으면 불안해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지 생각해 봅니다. 내게는 잡초같은 야생성이 남아 있는지,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힘이 있는지...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소리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나 또한 저 작물처럼 길들여진 때문이 아닌지...

작물밭의 잡초를 뽑아내며 오히려 잡초를 닮고 싶은,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오월의 단상입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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