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리뷰 3]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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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리뷰 3] 여백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7.04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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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저희 집 앞에 있는 감나무입니다. 수령이 오래된데다 수형도 멋스러워수시로 주위를 맴돌며 바라보곤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베란다에서 바라볼 때는 참 멋지다,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밭가에서 보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합니다. 여백 때문입니다.

베란다에서 보면 뒤에 하늘이 있어 나무의 모습이 산뜻하게 살아나지만 밭가에서 보면 뒤에 산이 막혀 있어 수세도 드러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여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런지요. 뭐 하나 빠진 게 없이 완벽한데 볼수록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채우고 쌓는데 급급해 여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여백을 낭비로 알았습니다. 아까운 공간을 왜 버리느냐, 하나라도 더 칠하고 채우기 위해 아둥바둥하며 살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백의 아름다움을 알았습니다. 없음으로 해서 존재하고, 비움으로 해서 채워지는
여백의 참다운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여백이 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님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제 손을 비우고 님이 들어와 앉을 수 있도록 가슴 속에 빈 의자도 하나 마련하겠습니다.

감나무의 존재조차 흐리게 하는 산이 아니라 수형까지 멋지게 살려내는 하늘을 닮겠습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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