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편지에서 소개해 드린 것처럼 황금빛 꽃이 아름답고 잎도 무성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호박이 열리지 않습니다.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겠지,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헤쳐보지만 있어야 할 호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한참을 생각해보니 아마도 테미네이터 종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식기능을 파괴한 종자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종자시장은 몬산토를 비롯한 몇몇 다국적기업이 지배합니다. 국내시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IMF 때 국내종묘회사가 다 이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터미네이터 종자를 만들어냅니다. 자신들의 종자를 심으면 정상적으로 자라지만 그 종자에서 씨를 채취해 심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해마다 자신들의 종자를 사 쓰라는 것이지요.
그런 사실을 들어 알고만 있었는데 막상 저 불임의 호박을 보니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저런 작물이 확산되면 농사는 어떻게 되고, 생태계는 또 어떻게 될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작물의 생식능력까지 파괴한 인간의 욕심이 생태계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곤두서고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아울러 종자주권의 중요성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수확량이 조금 더 나온다고 외래종을 찾을 게 아니라 내가 가꾼 것에서 종자를 채종해 쓰는 방식으로 토종종자를 지키고 보존해가는 것. 그것이 이 땅의 농부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사명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다시는 저 불임의 호박같은 작물이 나오지 않도록 말입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