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360] 터미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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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360] 터미네이터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7.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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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밭가에 심어놓은 호박입니다.

지난주 편지에서 소개해 드린 것처럼 황금빛 꽃이 아름답고 잎도 무성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호박이 열리지 않습니다.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겠지,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헤쳐보지만 있어야 할 호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한참을 생각해보니 아마도 테미네이터 종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식기능을 파괴한 종자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종자시장은 몬산토를 비롯한 몇몇 다국적기업이 지배합니다. 국내시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IMF 때 국내종묘회사가 다 이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터미네이터 종자를 만들어냅니다. 자신들의 종자를 심으면 정상적으로 자라지만 그 종자에서 씨를 채취해 심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해마다 자신들의 종자를 사 쓰라는 것이지요.

그런 사실을 들어 알고만 있었는데 막상 저 불임의 호박을 보니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저런 작물이 확산되면 농사는 어떻게 되고, 생태계는 또 어떻게 될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작물의 생식능력까지 파괴한 인간의 욕심이 생태계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곤두서고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아울러 종자주권의 중요성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수확량이 조금 더 나온다고 외래종을 찾을 게 아니라 내가 가꾼 것에서 종자를 채종해 쓰는 방식으로 토종종자를 지키고 보존해가는 것. 그것이 이 땅의 농부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사명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다시는 저 불임의 호박같은 작물이 나오지 않도록 말입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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