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384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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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384 수확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8.26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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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지난 일요일 아침, 읍내를 달리다 마주친 광경입니다.

밀레의 만종처럼 평화로운 모습에 마음이 끌려 다가가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세워 말린 깻단을 날라주는 바깥노인과 바닥에 앉아 막대기를 두드리며 터는 안노인. 나이가 들어 동작은 둔하고 느리지만 노부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미루어 하는 짐작이지만 노부부의 마음은 무척 분주할 것입니다. '이것으로 기름을 짜서 아들네 딸네 보내고, 지난해 분가한 손주에게는 따로 한병 보내야 하고...' 생각만해도 마음이 즐겁고 흐뭇할 것입니다.

수확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몇달 많은 땀을 흘리며 가꿔온 만큼 량이 많고 적고, 값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자체로 기쁘고 설레이는 것. 그것이 수확이요 결실이 아닐런지요.

일년 농사의 수확이 그러할진대 인생의 수확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제 나이 쉰 하고도 셋. 계절로 치면 결실을 수확해야 할 가을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농사를 어찌 지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거두어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조생종이 있으면 만생종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결실 또한 늦게 영글 수도 있으니까요.

설령 제대로 된 열매가 영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것을 키우고 가꾸는 그 과정 또한 생의 또다른 기쁨이요 즐거움이니까요. 작물과 달리 생의 방점은 결실보다 과정에 있으니까요.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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