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262]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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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262] 잡초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3.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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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시인)

한상도 작가는 한대 국문과를 나와 공기업 등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로 귀농한 농부 시인이다. 땅을 일구고 채마밭을 가꾸며 틈틈이 자신의 감성을 글로 표현하는 '태화산 편지'를 쓰고 있다. 한상도 시인의 '태화산 편지'을 데일리중앙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한겨울의 모진 추위를 온 몸으로 이겨낸 잡초.
ⓒ 데일리중앙
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그 첫번째 작업이 잡초 제거, 와송 심을 밭에 돋아난 풀을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겨우내 내버려두었던 비닐을 걷어내고 호미를 들고 두둑에 자라난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도 종류가 다양한지라 호미질 한번에 쑥 뽑히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몇번을 찍어내도 뽑히지 않는 놈도 있습니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히는 땀을 소매로 훔쳐가며 한두둑 한두둑씩 뽑아 나가는데 어느 순간 그런 잡초가 애초롭게 느껴졌습니다.

알고보면 저 잡초 또한 하나의 식물인데, 한겨울의 모진 추위를 몸으로 이겨내고 돋아났는데, 단지 와송 심을 밭에서 자라났다는 이유로 꽃도 피기 전에 뿌리뽑혀 버려져야 하니...

운명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이 가혹한 것이 어찌 저 잡초 뿐이겠습니까. 우리 서민들의 삶 또한 저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치솟는 전셋값에 삶의 터전마저 외곽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움켜쥔 잡초 위로 그런 서민들의 삶이 어른거려 호미를 내려치기가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와송 대신 잡초를 기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이것이 또한 너의 생이고 운명이거늘...'

마음을 모질게 먹고 더 열심히 호미질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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