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북쪽 처녀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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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북쪽 처녀를 만날 수 있을까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6.01.17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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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열린 대학 총학생회의 '통일 새날 열기' 동행 취재기

이 글은 지난 2003년 12월 30일부터 2004년 1월 1일까지 2박3일 간 금강산에서 남북 민간교류 엔지오 지우다우 주최로 열린 '통일 새날 열기' 동행 취재기다. 이 행사에는 전국 50여 개 대학 총학생회장단과 교수 등 200여 명이 참가했다.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다시 싣는다. - 편집자 주

"지난해 육로관광이 열린 이후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 지난 5년간 어림잡아 55만명이 다녀갔다. 남쪽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북쪽 사람들도 변하고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언어도 남쪽 사람들에게 친근한 표현으로 변하고 있다. 화장도 한다. 남쪽 여성들과 손도 잡고 심지어 포옹도 한다."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지난해 육로관광이 열린 이후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 지난 5년간 어림잡아 55만명이 다녀갔다. 남쪽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북쪽 사람들도 변하고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언어도 남쪽 사람들에게 친근한 표현으로 변하고 있다. 화장도 한다. 남쪽 여성들과 손도 잡고 심지어 포옹도 한다."

금강산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삼일포 관광을 앞두고 지난 1일 오전 온정각 휴게소에서 만난 안내 도우미 이지은(28)씨가 한 말이다.

그는 "남쪽 사람들이 오는 속도만큼 북쪽 사람들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통일을 앞당길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많은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을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일포(三日浦)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비치는 북녘의 전원 풍경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파종을 끝낸 들판에서는 벌써부터 파릇파릇 보리가 움트기 시작했고, 아낙네들은 개울가에서 물을 긷거나 한가로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먼지나는 신작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처녀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소학교에서는 방학을 한 까닭인지 한산했으며, 몇몇 아이들만이 나와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들판 곳곳에는 가뭄에 대비해 물을 저장하는 저수창고가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우리가 탄 버스가 지나갈 때면 한결 같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남쪽 손님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특별히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몸에 밴 듯이 익숙해 보였다. 중간중간에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군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봤지만 무심히 바라보기만 할 뿐 미동도 없었다.

옆에 앉은 김형이 "망부석인가봐"라고 소리쳤다. 남쪽에서의 경계근무와는 달리 총을 들지 않은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몇 시간이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일이 그들에겐 이미 일상이 된 듯했다.

문득 장전항(고성항)에 처음 도착해서 만난 북쪽 군인에게 춥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춥기는 왜 추워요? 일 없습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달리던 버스가 삼일포에 도착하자 우리는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유람선을 연상케 하는 호반식당 단풍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수수로 빚은 막걸리와 인삼술을 맛보며 여러 가지 기념품도 샀다. 단풍관의 안내원들은 유달리 상냥하고 살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일포는 온정리에서 동남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둘레 8km의 호수다. 신라시대 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랑(南石郞)·안상랑(安祥郞) 등 사국선(四國仙)이 뱃놀이를 하다가 빼어난 이곳의 풍광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고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울 속에 피어 있는 연꽃송이 서른여섯(鏡裏芙蓉三十六)
하늘가에 솟아오른 봉우리는 일만이천(天邊환계萬二千)
그 가운데에 놓여 있는 한 조각 바윗돌은(中間一片滄洲石)
바다 찾은 길손이 잠깐 쉬기 알맞구나(合着東來海客眠)"

삼일포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들은 햇빛을 받아 맑고 아늑했다. 호수 가운데에 다정하게 떠있는 사선정(四仙亭)과 단서암(丹書巖)이 한가롭게 유영을 즐기고 있었다. 일행을 따라 서둘러 발길을 옮기니 조선시대 3대 명필의 한사람이었던 봉래 양사언이 공부했다는 봉래대가 나타났다.

"거울 속에 피어 있는 연꽃송이 서른여섯(鏡裏芙蓉三十六)
하늘가에 솟아오른 봉우리는 일만이천(天邊환계萬二千)
그 가운데에 놓여 있는 한 조각 바윗돌은(中間一片滄洲石)
바다 찾은 길손이 잠깐 쉬기 알맞구나(合着東來海客眠)"

- 양사언의 칠언절시 '삼일포' (유홍준,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인용)

커다란 바위언덕으로 이루어진 봉래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호수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양사언은 삼일포에 머물면서 스스로를 선인(仙人)이라 부르며 금강산의 산수를 즐겼다고 전한다. 봉래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장군대로 이어주는 출렁다리를 건너자 바위 곳곳에 새겨진 혁명구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군대로 오르는 커다란 바위벽에는 '세상에 부림없어라'라는 제목의 "만주벌판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빨찌산이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이라는 글을 새겨놓았다.

영화 <실미도>에서도 등장하는 ".../ 비겁한 자야 갈테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고 다짐하는 장렬한 '적기가'의 가사도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 삼일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 곳곳에는 혁명구호들이 새겨져 있다.
ⓒ 데일리중앙

지난 74년 건립했다는 장군대에 올라서자 맞은 편 아담한 산에 연화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사색에 잠겨 있자니 호숫가의 반짝이는 은빛 모래밭과 푸른 물결을 벗삼아 홀연히 사선정에 둘러앉아 유하주를 기울이는 사국선들의 풍류가 들리는 듯도 하다.

삼일포의 비경에 취해 몽롱한 채로 장군대를 내려오니 어디선가 본 듯한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살피니 전날 만물상 안심대에서 만난 북쪽 안내원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끌어안고도 싶었지만 마음을 진정시킨 뒤 "어제 만물상에서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그거야 차를 타고 왔죠."

- 그렇게 말고 진심으로 대답해봐요.
"그걸 말하려면 조국통일이 돼야 할 수 있어요. 무작정 어떻게 말 한답니까."

"·············································"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한없이 고마웠다. 우린 말없이 삼일포를 걷고 있었고 땅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장전항으로 돌아갈 버스 앞에서 그는 내 수첩에다 '김세옥, 통일'이라는 글자를 크게 적었다. 따스한 그의 온기가 전해졌다. 나는 돌아서서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며 크게 웃어주었다.

버스에 올라 차창 밖을 내다보니 그의 작은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크고 둥근 두 눈이 햇빛에 반짝였다. 순간 23살 북쪽 처녀와의 애절한 인연을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 호수에서 바라보면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연화대.
ⓒ 데일리중앙

장전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허허롭고 쓸쓸했다. 점심도 거른 채 퇴근하는 길에 들렀다고 속삭이던 그의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시간 후면 금강산을 벗어나 서울을 향하고 있겠지-. 2박 3일간의 금강산 여행 일정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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