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신비의 땅 라오스... 메콩강 석양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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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신비의 땅 라오스... 메콩강 석양 장관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8.08.14 0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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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루라군-빠뚜싸이-탓 루앙-야시장 관광... 불교 사원은 곳곳에 있는데 학교는 어디에?
▲ '승리의 문'이란 뜻으로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 만든 라오스의 독립기념탑 '빠뚜싸이'와 분수대 앞에서(위 1~2번째). 최근 홍수로 메콩강의 물이 많이 불어났다. 건너편이 태국이다(위에서 3번째). 메콩강가에서 먹거리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위에서 4번째). 메콩강가에서 기념사진 한 컷(아래).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라오스(Laos).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듯한 신비함이 공존하는 땅.

내가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닷새 동안 여행했던 라오스(라오 인민민주주의공화국)는 그런 곳이었다.

첫날 오후 1시40분(한국시간 오후 3시40분)에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메콩강가로 달려갔다.

메콩강은 최근 홍수와 집중호우로 흙탕물이 크게 불어나 있었다. 저 건너편 태국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메콩강은 라오스와 태국의 국경이다.

우리는 라오스의 나라 꽃인 참파(champa flower)를 들고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메콩강 주변에서 우리의 닭꼬치 처럼 생긴 먹거리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는 한 번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둘째날에는 라오스의 독립기념탑인 빠뚜싸이(patuxai)와 불교 사원을 둘러보고 블루라군이 있는 방비엥(vang vieng)으로 이동하는 일정으로 채워졌다.

빠뚜싸이는 '승리의 문'이란 뜻으로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 만든 건축물.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라오스 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69년 세워졌다고 한다. 라오스는 프랑스로부터 1958년 독립했다.

6층 높이의 빠뚜싸이 전망대에 오르면 비엔티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에는 정부청사가 있고 저 멀리 대통령궁이 육안으로도 보인다.

▲ 라오스의 국내 각지로부터 모아진 불상을 비롯해 역사적·종교적 예술품을 전시해 놓고 있는 왓 호빠깨우(vat hokprakow) 사원(위 1~2번째). 1818년에 지어진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왓 씨사켓 사원(위에서 세번째). 라오스 대통령궁. 외부 경계가 없는 한가로운 모습이 이채롭다(맨 아래).
ⓒ 데일리중앙

왓 호빠깨우(vat hokprakow) 사원. 1565년 왕도를 루앙프라방(라오스의 북쪽)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할 때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1936년 프랑스에 의해 재건됐으며 국내 각지로부터 모아진 불상을 비롯해 역사적·종교적 예술품을 전시해 놓고 있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원 앞에 왓(vat)이 붙는 곳은 스님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사원에서는 지나친 애정 행위를 하거나 승려의 몸에 손을 대거나 허락없이 승려와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고 가이드가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승려를 보지는 못했다.

이어 왓 씨사켓(vat sisaket) 사원으로 가는 길에 라오스 대통령궁에 들렀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통령궁이 있다는 게 뜻밖이었지만 평일(화요일) 낮인데도 대통령궁 외곽을 지키는 경찰이나 경호 인력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는 대통령궁 앞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었다.

왓 씨사켓 사원은 1818년에 지어진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고 가이드가 얘기했다. 이곳에서도 우리는 승려를 본 적은 없다.

이어 우리는 비엔티안 시내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방비엥으로 출발했다.

▲ 라오스 여행 둘째날인 지난 7일 오후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길에 들른 소금마을인 콕사앗마을.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우리 일행을 졸졸 따라다니며 달러를 달라고 구걸했다.
ⓒ 데일리중앙

가는 길에 소금마을인 콕사앗마을에 들렀다. 땅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했다. 또한 우리가 도착했을 땐 마을 아이들이 나와 졸졸 따라다니며 달러를 달라고 구걸했다.

현지 가이드는 아이들에게 달러를 주면 안 된다고 했다.

라오스 공무원의 한 달 평균 임금이 우리 돈으로 15만~20만원인데 아이들에게 달러를 주게 되면 그곳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구걸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루 10달러만 구걸하면 공무원 월급의 두 배를 버는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겠냐는 것.

이번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라오스에는 불교 사원은 곳곳에 늘려 있지만 학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라오스의 문맹률은 도시의 경우 50%, 시골의 경우 90%를 웃돌 것이라고 가이드가 전했다.

▲ 바다가 없는 라오스는 여행 동안(8.6~10) 서울보다 평균 기온이 4~5도 낮았으며 밤에도 습도가 낮아 덥지 않았다. 우기라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도 했지만 대체로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 데일리중앙

우리는 7일 저녁 방이엥에 도착해 2박 3일 머문 뒤 9일 오전 다시 비엔티안으로 나왔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는 서울보다 평균 4~5도 낮았으며 밤에도 습도가 낮아 덥지 않았다.

이날 오후 라오스의 상징인 탓 루앙(that luang)을 관광했는데 45미터 높이의 황금빛 불탑이 인상적이었다. 인도의 석가모니 가슴뼈를 가져와 세웠다고 전해지는 탓 루앙은 라오스 국민들에게 '위대한 불탑'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또한 누워 있는 불상(와상)이 있는데 요염한 포즈가 눈길을 끌었다.

▲ 9일 오후 우리는 라오스의 상징인 탓 루앙(that luang)을 관광했는데 45미터 높이의 황금빛 불탑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누워 있는 불상(와상)이 있는데 요염한 포즈가 눈길을 끌었다.
ⓒ 데일리중앙

나는 그 밑에서 와상을 따라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 카메라로 불상을 내 손 위에 올려 놓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아 불상을 완벽하게 카메라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오스 여행 마지막 날인 이날 저녁에는 라오스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메콩강 야시장을 찾았다. 야시장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해질녘 메콩강변에서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비엔티안 시민들의 에어로빅 댄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메콩강의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몸을 흔드는 비엔티안 시민들의 흥겨운 율동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 일행 가운데 일부는 흥겨운 리듬에 맞춰 그곳 시민들과 함께 몸을 흔들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릴 때는 늦을 것이다."

메콩강 야시장에서는 라오스 전통 의상과 수공예품이 많이 팔리고 있었다. 대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목걸이와 장남감을 파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릴 때는 늦을 것이다."

닷새 동안 우리에게 재치있는 입담으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개그맨 출신의 가이드가 남긴 말이다.

이번 라오스 여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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